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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의 타락…삼덕, 안진 보고서 베꼈다 - 한국경제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
회계사법 위반한 삼덕 공소장 분석

삼덕, 주식 매수 청구가격 부풀리기한 안진측 초안 재탕
신창재 회장과 소송중인 어피너티, 회계법인과 커넥션 의혹

[단독] 회계의 타락…삼덕, 안진 보고서 베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어피너티 컨소시엄이 벌이고 있는 주식 풋옵션 분쟁이 뜻밖에 ‘회계 스캔들’로 번지고 있다. 국내 5대 회계법인인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과 삼덕회계법인이 공인회계사법 위반으로 잇달아 검찰에 기소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지난 10여 년간 급성장한 사모펀드와 이들 앞에서 철저하게 ‘을’일 수밖에 없는 회계법인의 역학 구도가 고스란히 노출된 사례라고 지적한다.
[단독] 회계의 타락…삼덕, 안진 보고서 베꼈다
8일 한국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삼덕회계법인의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삼덕은 교보생명 지분 5.33%를 갖고 있는 어펄마캐피탈(옛 스탠다드차타드프라이빗에쿼티)의 풋옵션 행사가격 평가 업무를 맡았는데 경쟁 회계법인인 딜로이트안진의 가격평가 보고서를 그대로 베낀 것으로 나타났다.

삼덕 소속 파트너회계사 A씨는 어펄마 임원으로부터 안진이 작성한 가치평가 보고서 초안을 건네받아 단순 오류 등도 수정하지 않은 채 표지와 서문만 바꿔달아 마치 자신이 직접 용역을 수주한 것처럼 최종 보고서를 완성해 제출했다. 이렇게 제출된 보고서는 어펄마가 신 회장을 상대로 행사한 풋옵션의 근거 자료로 활용됐다.

검찰은 신 회장과 풋옵션 분쟁을 벌이고 있는 어피너티 컨소시엄(교보생명 지분 24% 보유)과 딜로이트안진에 대해서도 서로 짜고 풋옵션 행사가격을 부풀렸다는 혐의(공인회계사법 위반)를 적용해 지난 1월 기소한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어피너티 컨소시엄과 어펄마는 최초 지분 취득 시기 및 과정 등에서 관련성이 전혀 없음에도 2018년 10월과 11월 각각 풋옵션을 행사한 뒤부터 사실상 한배를 탄 것으로 추정된다”며 “최대 고객인 사모펀드의 뜻을 차마 거스르지 못하고 불법 행위를 저지른 대형 회계법인에도 적잖은 타격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회계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신 회장과 어피너티 컨소시엄의 국제중재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가격 부풀리고, 보고서 재탕…FI-회계법인, 짜고 친 '교보 풋옵션'
檢 공소장으로 본 어피너티·안진·어펄마·삼덕의 관계
‘회계 스캔들’로 비화되고 있는 사모펀드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주식 풋옵션 분쟁 이면에는 회계법인의 독립성이 사모펀드와 같은 거대자본 앞에서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덕회계법인을 기소한 검찰 공소장을 보면 사모펀드와 회계법인의 부적절한 ‘커넥션’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삼덕회계법인 파트너 회계사인 A씨는 2018년 11월 26일 어펄마캐피탈의 B상무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B씨는 “어펄마가 보유 중인 교보생명 주식(지분율 5.33%)에 대해 신 회장에게 풋옵션을 행사하기로 하고 당초 안진 측에 행사가격 평가를 맡겼으나 최종 보고서를 낼 수 없게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사흘 뒤인) 29일까지 보고서를 (신 회장에게) 보내야 하니 안진 보고서 초안과 자료를 가져다가 삼덕 명의로 보고서를 발행해달라”고 부탁했다.

안진 보고서 표지만 바꿔 단 삼덕
B씨는 A씨가 승낙하자 안진이 작성한 자료를 이메일로 송부했고, A씨는 해당 자료에다 표지와 서문만 바꾼 최종 보고서를 삼덕 명의로 완성해 29일 오후 4시께 B씨에게 다시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안진 측 초안에 있던 사소한 오류조차 수정되지 않고 담기는 등 베껴 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B씨는 약 5시간 뒤 이 보고서를 신 회장 측에 풋옵션 행사가격 제시용으로 공식 제출했다.
[단독] 회계의 타락…삼덕, 안진 보고서 베꼈다
어펄마는 왜 이렇게 무리한 일을 벌여야 했을까. 어펄마와 신 회장 측이 2007년 체결한 주식매매계약에 따르면 풋옵션 행사가 이뤄지면 어펄마와 신 회장 측이 각각 독립적인 회계법인을 선임한 뒤 해당 회계법인이 행사일로부터 15일 내 주식평가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어펄마가 풋옵션을 행사하고 안진을 평가기관으로 선임했지만 앞서 어피너티 의뢰를 받아 동일한 용역을 수행 중이던 안진 측이 제출 기한을 단 3일 앞둔 시점에서 “(어피너티와 어펄마가 동일 회계법인을 선임한 데 대해) 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신 회장의 동의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계약이 막판에 무산됐다. 상식적으로 신 회장이 이를 문제 삼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을 안진이나 어펄마 측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검찰에 의해 기소된 건 어펄마가 아니라 삼덕이었다. 앞서 검찰이 올해 초 안진과 어피너티 사건에 대해 양측 관계자들을 모두 기소한 것과도 다른 결과다. 안진 소속 회계사들은 어피너티의 청탁을 받고 가능한 한 어피너티 측에 유리한 방법으로 행사가격을 부풀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용역비 외에 향후 제기될 소송 등 법률 비용을 어피너티 측이 모두 부담하겠다는 약속을 받는 등 부당한 이득을 취한 혐의도 제기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은 안진과 어피너티가 풋옵션 행사 가격 산정과정에서 서로 공모하고 그 대가로 금품 제공을 약속하는 등 공인회계사법상 허위 보고 및 부정 청탁 혐의가 모두 성립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반면 어펄마와 삼덕은 대가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일단 공인회계사의 허위 보고 혐의만 적용해 어펄마를 (기소 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이 같은 검찰 기소와 관련한 해명을 요청했으나 삼덕 측은 “드릴 말씀이 없다”며 언급을 피했다.

사모펀드 앞에서 무력한 회계법인
삼덕회계법인의 사건에 대해 한 대형 회계법인 출신 회계사는 “최근 감사인지정제 부활 등으로 대기업을 상대로는 독립성 및 공정성이 과거에 비해 크게 강화됐지만 사모펀드 앞에서는 여전히 ‘고양이 앞에 쥐’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삼일·KPMG삼정·딜로이트안진·EY한영 등 4대 회계법인조차 사모펀드가 주관하는 수천억~수조원대에 달하는 인수합병(M&A) 거래의 자문이라도 맡으려면 철저하게 ‘을’이 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만약 시한이 너무 촉박했다면 삼덕이 용역을 수주할 수 없다고 거절했어야 맞다”며 “심지어 경쟁사가 만든 보고서 초안을 고스란히 자기가 쓴 것처럼 꾸며 회사 명의로 발행한 것은 누가 봐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 풋 옵션

put option. 미래의 특정 시기에 일정한 가격에 되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어피너티컨소시엄 등이 대우인터내셔널 등으로부터 교보생명 지분을 인수하면서 대주주인 신창재 회장에게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계약을 맺었다.

이호기/정소람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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