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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양재동서 '이천쌀집' 우르르…4대그룹 MZ 요동친다 - 중앙일보

이건우 현대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조위원장이 노조 설립 신고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대상노무법인]

이건우 현대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조위원장이 노조 설립 신고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대상노무법인]

취업 시장엔 ‘남방한계선’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른바 명문대 공대를 졸업했거나 우수한 스펙(자격조건)을 갖춘 취업준비생들이 비(非)수도권 근무를 기피한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뉴스원샷] 이상재 산업2팀장의 픽
키워드: ‘남방한계선 아래’ 하이닉스 웃다
경력 3년 미만 사원급 수백 명 공채에
‘인서울’ LG전자·현대차 출신 대거 지원
“MZ세대 이직 러시 부르나” 재계 관심

보다 구체적으론 삼성전자 기흥캠퍼스가 있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네이버·카카오·NC소프트 같은 테크 기업이 대거 입주한 성남시 판교밸리가 각각 ‘기흥라인’ ‘판교라인’으로 불린다. 기업 채용 담당자에겐 엘리트 신입사원을 뽑기 위한 보루쯤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채용 시장이 얼어붙었는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오죽하면 “지방으로 군대 가는 것보다 지방으로 인사가 나면 애인과 헤어지는 일이 더 잦다”는 우스개까지 등장했을까. 대학만 반수(半修)하는 게 아니라 지방 배치를 받으면 ‘취업 반수’도 무릅쓰는 게 요즘 MZ세대(198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층)다. 궁여지책으로 울산이나 경남 거제에 있는 조선업체들이 판교에 기술·설계연구소를 세우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본사와 공장이 경기도 이천에 있어 ‘이천쌀집’으로 불린다. 즉 ‘남방한계선 아래’다.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지만 주요 근무지가 이천과 충북 청주에 있어 엘리트 인재를 유치하는 데 상대적으로 불리한 처지였다.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집적단지)를 세우는 것도 ‘고급두뇌 유치’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이 회사는 부품·장비업체와 손잡고 122조원을 들여 2024년부터 4년 단위로 반도체공장 4개를 지을 예정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월 1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M16 준공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SK하이닉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월 1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M16 준공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SK하이닉스]

그런데 최근 ‘이천쌀집’이 문전성시라고 한다. 지난달 25일 경력 3년 미만 주니어탤런트(경력사원) 서류 접수를 마감했는데, 지원자가 대거 몰렸다고 한다. 선발 예정 인원은 수백 명, 근무 지역은 경기도 이천과 분당, 청주다. 
 
더욱이 서울 양재동(현대자동차)과 여의도·마곡(LG전자) 등 ‘인(in) 서울 대기업’ 출신 지원자가 예상 밖으로 많아 고무된 모습이다. 불과 한 달여 전에 ‘수원갈빗집’으로 불리는 삼성전자로 경력사원 유출이 있었던 것에서 분위기를 반전한 셈이다. 
 
SK하이닉스는 연초에 성과급 산정 기준을 놓고 노사 간 갈등을 겪었다. 급기야 4년차 직원이 이석희 대표이사를 포함한 2만8000여 임직원에 항의 이메일을 보내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하이닉스에서 받은 보수를 반납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3개월 새 4대 그룹 젊은피 ‘대이동’

그러다 영업이익의 10% 이내에서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데 합의했다. 지난달엔 생산직과 기술·사무직 등 전 직군의 기본급을 평균 8.07% 인상했다. 여기에다 기존 4000만원대였던 대졸 신입사원 초임을 업계 최고 수준인 5040만원으로 인상했다. 직장인 익명게시판인 블라인드엔 ‘서키형(석희 형) 고마워’ 같은 친근한 표현이 올라왔다. 
 
현대차나 LG전자도 각각 성과급 지급 시기 조정, 임금 9% 인상 등 ‘통 큰 조치’를 했지만 불만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현대차에선 MZ세대가 주축이 된 사무·연구직 노조가 새로 만들어졌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MC사업본부)을 이달 말 종료하겠다고 밝혀, 인력 3400여 명이 ‘붕 떠 있는’ 상태였다. 회사 관계자도 “이들은 타 사업부나 계열사로 이동 배치한다고 해도 일부 이탈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경력사원 채용은 이달과 다음 달에 걸쳐 진행 예정이다. 이러면 불과 3개월 새 SK하이닉스 출신의 삼성전자행(行)을 포함해 현대차·LG전자 등 국내 4대 그룹에서 MZ세대의 대이동이 생기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남방한계선이 뚫렸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 또는 인재 유출 도미노가 생기는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기껏 키워놓은 집토끼 같은 인재가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주요 이슈에 대한 기존 세대와 MZ세대의 가치관.

주요 이슈에 대한 기존 세대와 MZ세대의 가치관.

“인재 키우려면 포용성 문화 정착시켜야”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의 저자인 이은형 국민대 경영대학장은 “이제 기업에서 포용 문화가 더 중요해졌다”고 진단한다. 지난달 30일 중앙일보 주최로 열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콘퍼런스에서 이 학장은 “요즘 MZ세대는 ‘나는 손해 보고 싶지 않다’는 개인화한 공정을 중요시한다”며 “조직 구성원으로 포용되지 않거나 자기 역량이 발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난다”고 말했다.
 
그는 MZ세대가 수긍하는 주요한 성공 사례로 생활용품 기업인 P&G와 최근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은 명품 브랜드 구찌를 꼽았다. 
 
“구찌는 30대 이하로 구성된 ‘섀도 커미티’를 운영한다. 경영진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고 나서도 섀도 커미티와 뜻이 다르면 실행하지 않는다. P&G는 수평적 기업문화를 정착시켰다. 이 회사엔 ‘우리 회사에서 임원이 되고 싶다’는 MZ세대가 꽤 된다. 여성 임원 비율 46%, 여성 관리자 비율 57%, 육아휴직 복귀율 100% 등 숫자로 증명된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3~5년간 투자한 ‘미래의 사자’를 지키고 키우려면 기업문화부터 수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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