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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인플레이션 공포 속 '0%대 물가' 일본은 왜? - 한겨레

일본은행 올해와 내년 물가 상승률 0%, 0.9%로 예상
기업 가격 인상 억제…저임금, 비정규직 증가로 전가
일부 기업 원자재 부담에도 물가 상승 폭 크지 못할 듯
연합뉴스 제공
연합뉴스 제공
최근 미국(6.2%), 유로존(4.1%), 한국(3.2%) 등 대부분 국가의 물가가 치솟고 있는 가운데 일본 물가 상승률이 ‘나홀로’ 0%대를 보이고 있다. 현재 물가 급등이 전 세계가 얽힌 공급망 차질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저물가는 매우 이례적이다. 원인은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오랜 불황으로 인한 가격 결정 구조의 왜곡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기업들은 불황 와중에 상품 가격 인상이 여의치 않자 가격을 올리는 대신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는데, 이로 인해 소비 여력이 떨어지면서 저물가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달 28일 올해와 내년 연간 소비자물가(신선식품 제외) 상승률을 각각 0%, 0.9%로 전망했다. 올해 분기 물가 상승률은 2분기 -0.6%, 3분기 0% 등이다. 일본 정부의 일시적 통신요금 인하를 제거해도 3분기 물가 상승률은 1%에 불과하다. 이 마저도 과거 마이너스(-) 물가를 고려하면 많이 올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장기간 저물가를 기록하면서 전 세계에 디플레이션 공포를 불러왔다. 코로나19로 대부분 국가가 저물가를 벗어나고 있는데, 일본의 물가만 여전히 꿈쩍 않는 셈이다. 일본도 공급망 차질 문제가 있다. 일본 도매 물가 상승률은 지난 9월 13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그런데도 원자재 비용 부담이 다른 국가들처럼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배경에는 긴 불황을 겪으며 굳어진 기업들의 가격 결정 방식이 존재한다.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달 ‘경제·물가 정세 전망 보고서’에서 미국 등에 비해 물가가 오르지 않는 이유를 “일본 기업은 비용 증가분을 가격에 전가하기보다는 이윤 축소로 흡수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쉽게 말해 일본 기업들은 저물가가 30년 넘게 이어지면서 판매 가격을 유지하려는 관행이 굳어졌다는 얘기다. 물가가 낮기 때문에 가격 경쟁에서 이기려면 제품값 인상은 엄두를 낼 수 없다. 문제는 기업들의 이윤 축소는 내부 희생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가격을 올리지 않는 대신 임금 인상 자제, 비정규직 증가 등의 형태로 손실분을 보완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지난해 평균 임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22위로 하위권이다. 올해 1∼7월 명목 및 실질 임금은 전년 대비 각각 0.4%, 0.7% 상승하는 데 그쳤다. 1990년 전체 임금노동자 중 20%였던 비정규직은 최근 37.2%까지 증가했다. 소득이 낮으면 상품을 소비할 여유가 없어진다. 결국 일본 물가는 공급 측에서 기업들의 가격 인상 억제로, 수요 측에서 소비 여력 감소로 좀처럼 오르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겉으로는 전 세계 고물가 행진 속 일본의 상품 가격이 낮아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경제 속살은 저임금 고통, 생산성 저하로 인한 경기 침체 등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김승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일본은 물가를 끌어 올리기 위해 양적완화를 8년 넘게 하고 있지만, 소비를 진작시킬 요인이 없는 상황이다”며 “1990년대 이후 기업들의 보수적인 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증가로 경제 주체들의 실질 임금은 전혀 늘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소비를 못하니 물가도 올라가지 않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일본 일부 기업은 원자재 부담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가격 인상에 손을 대는 모습이다. 최근 가정용 마가린류 및 밀가루 가격과 전기요금 등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는 물가 상승세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일본 미즈호리서치는 “내년 일시적으로 물가 상승률이 2%에 가까워질 수 있지만, 수요 견인형 상승 압력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치바은행은 “일본은 임금 인상이 확산되지 않으면 높은 물가 상승이 지속되기 어렵다”고 했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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