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고용노동부는 '주 52시간 제도 현장 지원 관련 브리핑'을 열고 "정부 설문조사에 응답한 50인 미만 사업장 가운데 93%가 '다음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 준수가 가능하다'고 답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권기섭 고용부 노동정책실장은 이날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 회원국 중 멕시코와 칠레 다음으로 길고 OECD 평균보다는 300시간 이상 긴 상황"이라며 "새로운 변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지만 장시간 근로 개선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점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다만 권 실장은 "5~49인 사업장의 95%에 해당하는 5~29인 기업은 2022년 말까지 근로자 대표와 합의한 경우 1주 8시간의 추가 연장근로를 통해 최대 60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방역 상황이 양호한 국가를 중심으로 외국 인력 도입을 추진하고 뿌리기업이나 지방 소재 기업에 우선 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8시간 연장근로가 불가능한 30~49인 기업도 코로나19 상황으로 외국 인력 도입이 지연돼 업무량이 폭증한 경우 특별연장근로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기업계에서는 코로나19 국면 속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희래 기자]
"기업 90% 주52시간 감내 가능"
고용부 설문조사 결과 발표하자
영세기업 "코로나에 일감 줄어
연장근로 안해도 되서 그런 것
경기회복땐 경영 악영향 뻔해"
경기 안산시에서 금형 업체를 운영 중인 대표 A씨는 다음달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별도 계도기간 없이 주 52시간제를 시행한다는 정부 발표를 듣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달부터 당장 작업 시간이 줄어들면 계약된 물량을 맞추기 어려워지고 납기를 지키는 것조차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고 싶지만 주 52시간제를 당장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호소했다.
16일 고용노동부는 "우리 사회의 오랜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하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2018년 3월 주 52시간제가 도입됐다"며 "기업 여력에 따른 준비기간을 부여하기 위해 3년에 걸쳐 규모별로 순차적으로 시행하는 한편, 현장의 의견을 들어 제도를 보완하고 기업을 지원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주 52시간제는 법이 시행된 이후 2018년 7월에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부터 적용됐다. 이후 지난해 1월 50~299인 사업장에 적용됐고, 오는 7월부터는 5~49인 사업장에 적용된다.
제도 시행을 앞두고 중소기업중앙회 등 업계에서는 대기업에 9개월, 50인 이상 기업에 1년의 계도기간이 부여된 점을 고려해 50인 미만 기업에도 그 이상의 준비기간을 부여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5~49인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업계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고용부 조사와 올해 4월 고용부·중소벤처기업부·중기중앙회가 공동으로 전문업체에 의뢰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두 조사에서 모두 80% 이상 기업이 현재 주 52시간제를 '준수 중'이라고 응답했고, 90% 이상이 7월부터는 '준수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반면 중기중앙회는 이번 조사가 업종에 상관없이 진행돼 아쉽다는 입장이다. 현재 주 52시간제 준비가 안 된 대표적 업종은 뿌리산업, 조선업, 건설업 등이지만 모든 업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해 이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일반 기업 중에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일감이 떨어져 연장 근로를 아예 안 하는 곳도 많다"며 "이들 기업까지 포함해 설문조사를 하면 결과에 착시현상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중기중앙회는 지난 14일 주 52시간제 도입이 어려운 뿌리산업과 조선업에 종사 중인 영세 중소기업 207개를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업체 44%가 아직 주 52시간제 준비를 끝내지 못했다고 응답해 이번 정부 조사와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조선업과 건설업 중소기업들은 야외 작업 비중이 높아 주 52시간제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상 악화 등으로 작업이 밀렸을 때 주 52시간제 아래에서는 유연한 대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뿌리산업 중소기업들은 인력 부족으로 주 52시간제 도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번 조사에 대해 영세 중소기업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플라스틱 제조업체 대표 B씨는 "우리 같은 영세 중소기업에 주 52시간제를 강제로 도입한다는 건 그냥 사업을 접으라는 뜻"이라며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과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다는 점을 정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희래 기자 / 이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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