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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AVC·中 홍색공급망 충돌...삼성·SK·LG 고민 깊어 - 서울경제 - 서울경제신문

“우리만의 반도체 공급망을 갖겠다”는 미국 정부와 이에 맞서 ‘반도체 자립’을 선포한 중국의 움직임이 빨라지며 국내 반도체 업계에는 싸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설계부터 제조까지 전 세계적으로 분업화된 시장에 길들여져 있던 국내 반도체 기업들로서는 ‘산업 지형’이 통째로 바뀌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거듭되고 있기 때문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의회의 반도체 산업 지원법 발의를 목전에 두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가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아울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와 더불어 전기차 배터리의 미국 내 공급망을 점검하라고 지시한 가운데 분쟁에 빠진 국내 배터리 업계는 미국 정관계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당장 삼성전자의 경우 오는 12일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이 소집한 ‘반도체 회의’에까지 초정을 받은 상태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아직 누가 참석할지는 결정이 안 됐다”면서도 “미국 정부의 움직임을 위기이자 기회로 보고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중국을 배제하고 반도체 ‘AVC(Alliance Value Chain)’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미 의회 입법과 백악관 회의 등을 계기로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설계 능력 대비 제조 능력이 절대적으로 취약한 미국 입장에서 보면 중국과 인접한 대만에서 첨단 반도체의 대부분을 제조하는 현재의 공급망은 미국에 장기적 위협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창한 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레드오션이었던 반도체 제조가 AI 시대, 미중 분쟁 등을 맞아 블루오션으로 급변하는 제조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면서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자국 내 공급망을 검토하는 100일 동안 다양한 추가 지원 정책들이 잇따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미국의 인텔과 대만의 TSMC가 이미 미국 정부의 지원책을 등에 업고 애리조나에 대규모 설비투자를 시작했다. 이들이 중장기로 세계 정보기술(IT) 트렌드를 좌우하는 마이크로소프트·애플 등 미국 기업들과 전략적으로 협업할 경우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판도는 요동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서 ‘버티기’에 돌입한 중국의 움직임도 좌시할 수 없다. 미국의 중국 산업 발전 저지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첨단산업의 내수 시장 적용을 확대하고 부품과 장비를 내재화하는 전략에 착수했다. 중국 내에서 반도체와 제품의 가치 사슬이 완성되는 이른바 ‘홍색(RED) 공급망’ 구축이다.

실제 중국은 최근 양회와 14·5 규획(제14차 5개년 규획)을 중심으로 미국 트럼프 정부가 폐기를 요청했던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사실상 부활시켰다. 아울러 미국의 간섭과 제재를 덜 받는 첨단산업의 자국 내 공급망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SK하이닉스 출신이 중국에 D램 공장을 세우는 등 해외 인력을 끌어들이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반면 기술 패권을 쥔 미국과 거대 시장인 중국 사이에서 국내 반도체·배터리 업계 등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사업 포트폴리오가 미국과 중국에 이미 분산돼 있는 상황에서 미중 갈등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선진국들의 조 원 단위 자국 기업 지원에 ‘기술 경쟁력’마저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선진국들이 이미 수십조 원 규모의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며 “우리도 대기업들이 검증되지 않은 기술 등의 연구개발에 뛰어들어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윤홍우 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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