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률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난다. 지난 2월 26일 첫 백신 접종을 시작한 한국은 접종률이 2.47%(14일 기준 질병관리청 집계, 1차 접종)에 머물고 있다. 인구 100명당 2명꼴로 1차 백신을 맞은 셈이다. 이는 접종 속도가 빠른 다른 국가들이 두 자릿수 접종률을 보이는 것과 비교된다. 이스라엘은 61%, 영국은 55%, 칠레는 37.3%, 미국은 33%의 백신 접종률을 기록하고 있다. 전 세계 평균(5.6%), 아시아 국가 평균(3.1%)보다도 한국의 백신 접종률은 낮다. 남미의 페루(2.75%), 말레이시아(2.56%)와 유사한 수준이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임박했지만, 대한민국은 인구 100명당 접종 횟수 1.82회로 ‘백신 확보에서 완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 속도를 더 높이지 않으면 정부가 목표로 한 오는 11월 집단면역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긴 터널의 끝이 아니라, 아직도 터널 안에 갇힌 상황이다"라면서 "정부가 K방역을 내세우며 확진자 숫자 줄이기에 골몰한 사이, 정작 제일 중요한 ‘코로나19 백신’ 확보에는 실패했다"고 말했다. 백신 확보의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백신 가격을 따지지 말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화이자, 모더나 등 백신 확보를 위한 외교적 힘을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신 접종 속도를 높이려면 ‘백신 확보’에 힘을 쏟아야 한다. 아스트라제네카, 존슨앤드존슨(J&J) 자회사 얀센 백신 부작용 논란까지 터지면서 백신 접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11월까지 전 국민의 70%를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치겠다는 정부의 ‘집단 면역 달성’ 목표에도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서 정부가 이미 도입 중이거나 도입할 계획인 백신은 현재까지 총 5종(아스트라제네카·화이자·모더나·얀센·노바백스)이다. 상반기 공급이 확정된 물량은 904만4000명분(1808만8000회분)이며 2분기 중 얀센, 모더나, 노바백스 백신 271만2000회분을 추가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물량을 확보한 제품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다. 정부가 상반기(1∼6월) 내 도입을 확정지었다고 밝힌 백신 1045만명분 중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얀센도 2분기(4∼6월) 중 초도 물량 10만명분을 기점으로 600만명분을 공급받을 계획이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 백신은 희귀 혈전증 논란으로 유럽 일부 국가와 미국 등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하면서 ‘안전 리스크’가 커졌다. 희소 혈전증 때문에 국내에서는 30세 미만에게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지 않게 됐다.
화이자와 같은 유형의 백신인 모더나의 경우 공급 일정과 물량 등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모더나 백신은 7월까지 미국 우선 공급을 선언, 올해 2000만명분 도입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희귀 혈전증 논란이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백신 접종 대상자가 제한되거나, 접종 중단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접종 대상자가 제한될 가능성도 있다.
오는 7월부터 19∼64세 모든 성인이 백신 접종을 시작하는데, 추가 물량 확보 없이는 접종 대상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추가 물량 확보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현재 백신 접종률이 낮은 건 정부가 제때 넉넉한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면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물량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안전성 문제까지 터졌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제 실무진에서 백신 확보에 나서기엔 한계에 왔다"라며 "미국과 같은 나라를 대상으로 정상 간 외교 전략을 통해서라도 물량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염호기 대한의사협회 코로나19 대책본부 전문위원회 위원장(인제의대 호흡기내과 교수)은 "국민이 내가 언제쯤 백신을 맞을 수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면서 "(집단 면역을 높이기 위해선) 국민에게 막연하게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염 위원장은 "현재 허가된 백신들이 워낙 빨리 개발돼 부작용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라며 "국가 차원에서 백신도입 TF에서 힘써 그나마 낫다는 평가를 받는 화이자, 모더나 등 mRNA 백신 추가 확보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K방역을 선전하면서, 정작 전문가 집단의 목소리에 여전히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염호기 위원장은 "정부가 그간 K방역에 골몰해 무작정 검역과 방역 기준을 일괄적용하거나 강화하는 것에만 중점을 두고 정책을 펼쳤던 측면이 있다"면서 "이제라도 전문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 근거에 의해 ‘코리아 스탠다드’의 방역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방역 핵심은 백신으로 백신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에서 신속한 접종을 실행한다는 전제하에서 계획된 집단면역 형성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아스트라제네카 이외에도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 확보에도 균등하게 힘써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며 "이 과정에서 정부가 오판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마 부회장은 "청와대, 행안부, 복지부, 질병청 등이 백신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각개 전투로 발언하거나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문제다"라며 "중앙정부를 비롯해 각 지자체 공무원들도 백신 분야 민간 의료계 전문가들과도 충분한 소통을 통해 해결점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신 저가 구매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마 부회장은 "우리나라 백신 정책은 ‘저가 구매’ 기조에 치중된 측면이 있다"며 "가격을 따지지 말고 코로나19와 같은 시급한 상황에서는 신속한 백신 도입 체결을 이뤘어야 했다"고 말했다.
국산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정작 아직 개발 속도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도 있다. 일각에선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개발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도 있지만, 정부의 투자 부족도 하나의 이유로 꼽는다.
염호기 위원장은 "한국도 코로나19 백신을 언젠가는 만들어야 한다"면서 "백신 임상에 최소 500억~600억원이 투입되는 것으로 본다"며 "브라질이나, 아프리카 등 확진자가 많은 곳에서 임상을 진행할 수 있게 정부가 과감한 투자를 했다면 개발 속도가 더 빨랐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아직 국산 백신 중 임상 3상 시험에 진입한 백신은 없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국내에선 백신 개발사 총 5곳이 임상 계획 승인을 받아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5곳 가운데 제넥신은 DNA 백신을, 셀리드는 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을 개발해 각각 임상 2상 시험에 착수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합성항원 백신, 진원생명과학은 DNA 백신, 유바이오로직스는 합성항원 백신에 대해 1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백신의 임상 3상 시험만을 위해서도 통상 2000억원 이상의 재정이 소요된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제2부본부장(국립보건연구원장)은 "백신 1종을 개발하기 위해 실패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수천억원의 투자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 "연구개발전문가, 개발회사에 지원과 여건을 만들어주었는지 계속해서 반성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코로나19 백신 개발 정부 예산은 약 687억원으로 지난해 490억원보다 197억원 증가했다.
백신 종주국인 미국의 현실은 어떨까. 미국은 외국인이든 자국민이든 언제든 원하는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화이자, 모더나 등 백신을 2차까지 접종을 완료한 인구는 7532만여명으로 전 인구의 23%다. 지난 13일(현지시각)부터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백신을 맞을 수 있다. 한 백신 전문가는 "백신 주권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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