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농수산물 중심으로 물가 상승에
하반기 원자재 상승으로 물가 여파 우려
전문가들도 “일시적“ VS “인플레 온다”
쌀값이 전년대비 14.0% 오르면서 쌀을 주원료하는 상품 가격도 줄줄이 인상됐다. 통계청의 ‘5월 소비자 물가동향'에 따르면 공산품 막걸리 가격은 전년대비 14.9% 올랐다. 사진은 10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막걸리. 연합뉴스.
엔카닷컴에서 현대차 투산이나 기아차 쏘렌토 일부 모델의 6월 시세는 각각 3600만원대와 3900만원대. 신차보다 100만∼300만원 가량 비싸다. 인기 모델인 데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신차 공급이 지연되면서 중고차가 신차보다 가격이 높아졌다. 서울 장안평 중고차 시장에서는 중고차 가격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다. 중고차 거래상 표상희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4∼5월 비수기에는 가격이 낮아져야 하는데 모닝이나 레이, 카니발 등 인기 차종을 중심으로 같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수급난 등의 영향으로 신차가 제때 출시되지 않아 중고차의 가격 역전 현상이 벌어진 배경으론 공급이 부족한 ‘병목현상’이 꼽힌다.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세가 더욱 심각한 분야는 농수산물이다. 올해 들어 대파나 계란 등 농수산물이 가격이 급등한 것도 조류인플루엔자(AI)나 작황 부진 등으로 공급이 줄어든 탓이 크다. 정부는 농수산물은 하반기부터, 차량은 연말께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면서 가격 상승도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시적 요인에 따른 가격 교란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1980년대 이후 사라진 인플레이션의 ‘재림’을 알리는 전주곡이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인플레이션 압력을 점차 키우는 보다 구조적인 요인이 등장했다는 얘기다. 과연 한동안 사라졌던 인플레이션 공포는 세계경제에 다시 찾아오는 것인가?
서울 용두동에서 7년째 음식업을 하는 이내중(51)씨는 “가게 열고 요즘처럼 비싼 적이 없었다”며 “돼지고기 1㎏에 2만원이 넘어가 지난해보다 40∼50% 올랐는데 손님이 줄어들까 봐 음식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장아무개(76)씨도 “시장에 가면 4000원 하던 계란 한판이 7500원하고 대파 한단 값도 엄청 올랐다”며 “다른 것도 올랐는데 계란과 대파는 너무 올라 외울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누리집을 보면, 9일 기준 달걀 한판(30개)은 7537원으로 전년 같은 날에 비해 46.2% 올랐다. 깐마늘(7537원·1㎏), 콩(1만1164원·1㎏ ), 한우안심(1만5725원·100g), 배(4만8006원·10개) 등 대부분이 지난해 같은 날보다 10∼40% 이상 올랐다. 정부가 달걀을 무관세로 해외서 대량으로 들어왔는데도 오름세가 유지되는 등 가격 상승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하반기 들어 공급이 나아지면서 가격이 안정화될 것”이라면서도 “이상 기후로 작황이 안 좋아질까 걱정스러운 부분은 있다”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국제 시장에서 원유는 물론 철광석·구리 등 원자재, 곡물 가격도 상승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 8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배럴당 70.05달러로 마감해 2018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을 보였고, 두바이유도 4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배럴당 70달러대에 진입해 2018년 11월 이후 최고가를 보였다. 구리는 런던금속거래소에서 지난 5월 톤당 1만달러를 넘었다가 9천달러대로 주춤하고 있지만 지난해 3월 장중 최저가인 4600달러대에 비하면 두배가 넘는다. 철광석도 지난 5월12일 톤당 233달러로, 글로벌 원자재 가격을 공시하는 플라츠(Platts)가 2008년 6월 인덱스 가격을 공시한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을 보였다. 식량도 급등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측정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가 5월에 127.1포인트로 2011년 9월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하는 등 기저효과를 감안해도 전반적인 가격 상승을 보였다. 임금도 올랐다. 미국에선 구인난에 은퇴자가 늘어나면서 임금이 오르고 있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3월말 기준으로 식당과 호텔 분야 99만3천명을 포함해 810만개의 미충원 일자리가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미 맥도날드와 아마존, 언더아머 등은 임금 인상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에스케이(SK)하이닉스, 삼성전자, 엘지(LG)전자 등 대기업 임금이 7∼9%가 올랐다. 올 상반기 농수산물 중심으로 가격이 올랐다면, 하반기에는 국제 원자재와 곡물 등으로 인한 가격 상승 압력이 있는 셈이다. 동시에 임금 상승에 따른 수요 차원에서도 상승 요인이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은 국내 시장에는 3∼6개월 정도 차이를 두고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행은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이 추세적으로 10% 상승하면, 국내 소비자물가를 최대 0.2%포인트까지 끌어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통계청의 ‘5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107.46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6% 올랐다. 지난 4월 2.3%에 이어 오름폭은 더 커졌다. 한은의 물가목표치인 2%를 웃도는 수치다. 국제적으로도 물가 상승 움직임이 뚜렷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월의 2.4%보다 0.9%포인트나 높아져 2008년 10월의 3.8% 이후 12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과거 기준으로 현재의 소비를 재단하자 보니 실제 물가 상승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소비자물가 측정 기준은 2015년 선정한 품목에, 2017년 정한 품목별 가중치다. 이 때문에 코로나19로 급변한 소비 변화와 차이를 보여 과소 측정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비자물가 측정 460개 품목에는 올해부터 무상 교육을 실시하는 고등학교납입금은 물론 소비가 급감한 영화관람료, 항공료, 목욕료, 헬스클럽이용료 등도 포함돼 있다. 반면 마스크, 소독제 등 소비가 많이 늘어난 방역용품은 포함되지 않았다. 류근관 통계청장은 “과거 기준으로 측정해 품목과 가중치를 바꾸지 않는 이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5년 단위로 바꾸는 소비자물가 품목과 가중치는 올 연말이 변경할 시점이다. 금융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코로나19가 소득분위별 체감물가상승률에 미친 영향’을 보면, 소비 변화를 고려한 물가상승률을 점검했더니 2020년 물가상승률은 0.66%로 공식 지표(0.54%)보다 0.12%포인트 높았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도 유럽중앙은행(ECB)가 지난해 말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조사한 결과 공식 지표보다 높게 나왔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해 저소득층의 소비 비중이 높은 식료품 등이 많이 올라 가난할수록 물가상승률을 더욱 높게 체감했다. 소득 하위 1분위의 체감 물가상승률은 1.16%로 공식 소비자물가상승률의 두 배 이상이었던 반면 상위 20%인 5분위는 0.45%에 그쳐 대조를 보였다. 금융연구원 박성욱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가 가계에 미친 영향은 고용 및 소득뿐만 아니라 소득계층별로 실질 생계비에 영향을 주는 체감물가의 변화까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의 물가 상승세는 일시적이라는 쪽에 정부는 무게를 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소비자물가와 관련해 “오름세를 주도한 것은 기저효과와 일시적 공급 충격”이라며 “하반기로 갈수록 점차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물가 리스크 현실화 가능성에 대비하고 과도한 인플레이션 기대 형성 차단 등에 총력 대응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최근 물가 상승 흐름을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김학균 신영증권 센터장은 “지난해 워낙 안좋아 기저효과가 큰데 4분기가 되면 사라져 물가 상승도 둔화될 것”이라며 “임금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도 기술 진보로 일자리가 크지 늘지 않고, 공공 투자에 따른 수요 창출에 따른 영향은 당분간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도 “원자재 가격 상승과 미국의 구인난에 임금 상승, 한국 경기회복 등 변수가 많다”면서도 “지금으로선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갈 수준이라기보다 기저효과로 올랐다 안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추세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견해도 있다. 무엇보다 한동안 세계경제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억눌렀던 구조적 요인들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어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국내 유동성이 커지고, 경기회복이 빨라져 인플레이션 압력이 있다”며 “정부는 원자재 가격 등만을 얘기하는데 향후 백신 접종이 확산되고 소비가 살아나면 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국 경제학자인 찰스 굿하트는 <인구대역전>에서 그동안 중국과 동유럽의 값싼 노동 공급으로 인플레이션이 억제됐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는 고령 인구가 생산가능인구보다 늘어나 노동공급 축소에 따른 임금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국제기구들도 확실한 판단을 유보하는 분위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과 관련해 제조업 중심의 회복과 코로나19로 광산 작업 중단에 따른 기저효과, 항만 적체 등 물류난 등을 일시적인 요인으로 꼽았다. 동시에 에너지 전환과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새로운 수요가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도 지속적인 가격 상승 요인이다. 일시적 현상인지, 지속해서 가격 상승이 이어질지 판단을 내리지는 못한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최근 세계경제전망을 내놓으면서 “올해 인플레이션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철저한 경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정훈 이지혜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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