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처폰` 대성공이 오히려 독 됐다
하지만 그 영광의 시절이 LG전자에는 역설적으로 독이 됐습니다. 2007년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선보이며 전에 없는 휴대폰 대격변기가 도래했기 때문인데요. 당시 삼성전자는 아이폰에 대응하기 위해 히트작 애니콜 시리즈를 과감히 버린 뒤 2008년 첫 스마트폰인 옴니아에 이어 2010년 갤럭시S를 처음 출시할 때까지 고통의 시간을 버텼죠. 하지만 LG전자는 피처폰 영광을 재연하는 데만 에너지를 집중했습니다. 당시 LG의 자문 업체인 맥캔지는 스마트폰 시장이 단기 시장에 불과할 것이라 조언했고, LG전자에 피처폰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LG가 이를 충실히 따랐던 것은 뼈아픈 선택이었죠.
2010년 1O월 LG전자는 `옵티머스` 시리즈로 시장의 문을 두드립니다. 하지만 이미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전자의 갤럭시폰이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죠. 절치부심해서 2014년 내놓은 `G3`는 초고해상도(QHD) 디스플레이를 내세우며 1000만대 이상 팔렸습니다. 휴대폰 명가 LG의 부흥을 예고하는 수치였죠. 하지만 2015년 G4의 부진을 시작으로 V10도 연속해서 판매가 저조했고, 2016년 야심 차게 내놓은 모듈형 스마트폰 G5의 품질 문제까지 터졌습니다.
특히 피처폰의 영광을 조급하게 재연하려 하면서 MC사업본부 수장을 잇달아 교체한 것이 LG 스마트폰만의 정체성 쌓기를 어렵게 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2015년 2분기부터 MC사업본부의 적자구조가 심화했는데, 이때부터 MC사업본부를 거쳐간 수장만 4명(조준호·황정환·권봉석·이연모)으로 재임 기간이 평균 1년여에 불과했습니다. 리더는 바뀔 때마다 신사업에 대한 의지를 표하기 마련이고, 그렇다 보니 구성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겠죠.
LG 스마트폰의 몰락은 `평범하지만 예쁜 프리미엄폰`을 만들어내지 못한 게 컸습니다. 다소 마니아스러운 모델들을 계속 출시했거든요. 모듈형 스마트폰 G5, 듀얼스크린폰 V50, 가로로 돌리는 폰 LG 윙까지 일부 소비자만 좋아할 특이한 기능들을 탑재했죠. 결국 출시되지 못한 펼치면 넓어지는 롤러블폰도 대중의 호기심은 자극하지만 제대로 된 판매고를 기록하지 못했을 확률이 큽니다. 특이해 보이고 신기한 모델에 반응하는 건 소비자 입장에서 길어봐야 1~2주일 테니까요.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제조사가 철수하는 것은 LG전자가 처음이 아닙니다. 2014년 벤처신화의 산 증인 `팬택`도 무너진 바 있죠. 팬택은 1991년 직원 6명, 자본금 4000만원으로 출발한 벤처회사였는데요. 한때 무선호출기 `삐삐` 시장에서 세계 톱7 안에 들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피처폰으로 주 종목을 바꾼 뒤 2001년 현대큐리텔, 2005년 SK텔레텍을 인수하며 삼성전자·LG전자와 맞서는 휴대폰 업체로 커나갔습니다. 하지만 팬택도 스마트폰 시대가 시작되면서 자본과 공급망을 들고 진격하는 글로벌 제조 대기업과 정면 승부하기 힘겨웠죠. 스마트폰 `베가` 시리즈를 내놓고 총력 대응했지만, 연구개발비와 글로벌 부품 수급 등에서 힘에 부쳤습니다. 2007년에 한 차례 워크아웃을 겪은 팬택은 2014년 최종 법정관리로 들어가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LG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머뭇대는 사이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약진은 현실화됐습니다. 시장조사 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 조사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간 LG전자의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각각 3.7%, 2.8%, 2.1%, 2.2%로 스마트폰 전체 제조사들 사이에서 9위 수준이었습니다.
화웨이는 2019년부터 미국의 제재를 받았으나 최소 10.2%에서 최대 17%까지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며 삼성전자와 애플에 이어 시장점유율 3위를 기록했고요. 중저가폰으로 무장한 중국 제조사인 샤오미는 2017년 6.1%로 시작해 2020년 11.2%(4위)까지 꾸준히 시장점유율을 높여왔으며 오포와 비보도 지난해 기준 각각 8.8%(5위), 8.6%(6위)까지 시장점유율을 확대해왔습니다.
생활가전과 자동차부품 사업에 `올인`
LG전자는 이제 `아픈손가락`인 스마트폰 사업부를 정리하고, 나머지 사업으로 훨훨 날 수 있을까요? 먼저 3400여 명에 달하는 스마트폰 사업부 인원은 재배치에 들어갑니다. 연구개발(R&D) 중심인 MC사업부 인력들은 LG전자 내 주요 사업부인 생활가전(H&A)이나 전장(VS)사업본부 등 필요한 사업으로 옮기게 됩니다. 6세대(6G) 이동통신 기술, 소프트웨어 개발 등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LG전자는 앞으로는 잘하는 것에 더 집중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대표적인 파트가 바로 `백색가전은 LG` 신화를 만들어낸 생활가전 파트죠. 이미 2020년 LG전자의 전체 영업이익 3조1950억원에서 73.6%(2조3526억원)가 생활가전 사업부에서 나왔습니다.
지난 7일 발표된 올해 1분기 잠정 실적도 생활가전 사업부가 이끌었습니다. LG전자는 매출 18조8057억원, 영업이익 1조5178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역대 분기 중 최대 실적입니다. 영업이익은 종전 최대치인 2009년 2분기 1조2438억원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죠. 어떻게 이런 수치가 나왔느냐면 글로벌 경기 회복세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보복 소비로 프리미엄 가전과 TV 판매가 높은 판매량을 보이며 실적을 이끌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특히 생활가전 사업을 당당하는 H&A사업본부의 분기 실적이 사상 처음으로 매출 6조원, 영업이익은 8000억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부가 매각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LG전자가 매각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들에 모바일 원천 기술 지식재산권(IP)은 넘기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거든요. LG전자 입장에서는 전장 사업의 자율주행, 텔레매틱스(차량 무선 인터넷 서비스) 등 서비스에 스마트폰 사업부에서 키워온 모바일 기술을 접목할 수 있으니 원천 기술은 넘기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고요. 그러니 사업부를 사고 싶어하던 기업들의 흥미가 떨어졌겠죠. 지난 3월 5일 콘퍼런스콜에서도 LG전자는 "빅데이터, 커넥티드카, 인공지능, 로봇 등 미래기술을 위해 모바일 부문 핵심 기술을 보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부 철수 결정이 `잘하는 것을 더 잘해내고, 새로운 사업에서 더 영향력을 넓혀가겠다`는 LG의 계획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홍성용 기자]
`홍키자의 빅테크`는 IT, 테크, 스타트업, 이코노미와 관련된 각종 이슈 뒷얘기를 파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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