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타증권·신영증권은 법률대리인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했고, 현대차증권은 법무법인 율촌을 내세웠다. 1심은 공식 플랫폼을 통한 거래가 아닌 만큼 법적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 피고측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은 태평양이 금융시장에서 매매계약시 다양한 비정형화 의사 합치 사례를 들며 정공법으로 승부하면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현대차證, 일부 매도 후 ‘부도처리’되자 체결 거부
사건은 2018년 5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차증권 직원 D는 채권거래 전용 시스템인 특정 메신저를 통해 이 사건 기업어음 중 총 160억5000만원 상당(185일물·364일물)을 매수할 수 있는지 유안타증권 직원 C에 문의했다. 또 매수가 가능하다면 K사 직원 L을 통해 어음 일부를 매도하겠다고 했다.
이에 C는 사내 리스크팀 문의를 거쳐 매수 가능하다고 답했다. L은 기업어음중 185일물 어음 150억원 상당, 364일물 어음 10억5000만원 상당을 매도하겠다고 했고, 이에 C가 ‘매수 확정’이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L도 ‘ㅎㅈ(확정)’이라고 답했다. 이후 C는 364일물 어음 10억원 상당을 이전받고 원고에 9억5996만6449원을 지급했다.
문제는 이 사건의 기업어음 기초자산인 사모사채에 대해 크로스디폴트(동반 채무불이행)가 선언되면서 불거졌다. 해당 어음의 신용등급이 AA에서 C로 하향 조정됐다는 사실이 블룸버그 통신 등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2018년 당시 금융업계에서 큰 이슈였던 ‘중국발(發) ABCP 부도사태’의 여파에 따른 것이었다.
결국 이 사건 기업어음 중 186일물 어음이 만기일인 같은해 11월 9일까지 상환되지 않았고 중국지방공기업인 G가 지급보증을 이행하지 못해 해당 어음은 최종 부도처리됐다. 원고측은 "단시일 내 대금을 지급하고 인도받아 가기로 약속했던 현대차증권이 해당 어음이 부도처리 되자 대금 지급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현대차증권은 "매매 계약이 성립된 바 없다"고 반박했다. 쌍방간 확정적이고 구속력 있는 의사의 합치가 있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설령 이 사건 기업어음에 관한 계약이 체결됐다 해도 피고는 당시 G가 사모사채를 지급보증했고 신용등급이 AA임을 전제로 이 사건 기업어음을 매수했다고 강조했다. 즉, 어음에 중대한 하자가 있어 해당 매매계약을 해제하거나 착오를 이유로 취소할 수 있으며 원고에게 매매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반면 서울고법 민사 12-3부(부장판사 이승한 천대엽)는 원심을 깨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현대차증권이 유안타증권에 103억5000만원, 신영증권에 68억8000만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2심 재판부는 "현대차증권 직원이 투자증권 등으로부터 매수하기로 한 기업어음 961억원 중 자사 내부 보유한도 600억원을 초과한 361억원을 다른 회사에 일시적으로 보관했다"며 "이 과정에서 현대차증권이 일정 기간 내에 다시 기업어음을 매수하거나 제3의 매출처로 하여금 매수하도록 하는 전제 아래, 유안타증권으로 하여금 기업어음을 매수해서 보관하게 하고도 그중 일부만 매수하고 나머지 기업어음을 매수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행위는 어음에 대한 매매계약이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를 부여했는데도 이유 없이 매매계약 체결을 거부한 것이어서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원고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태평양은 쌍방간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어떻게 입증할지 고심했다. 이에 수십개의 금융회사 임직원들 교신 내용을 확보했다. 기업어음 매매계약에서 통상 비정형화된 의사 합치가 대다수라는 점을 피력하는데 집중했다.
태평양의 윤지효 변호사(사법연수원 40기)는 "이른바 금융거래 선수들 사이에 통상 어떻게 거래를 하는지, 워낙 짧은 시간 안에 수백억 및 수천억이 오가고 메신저로 엄청난 양의 대화를 하고 의사 합치를 한 다수의 사례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또 "채권시장에서 특정한 메신저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의사 합치의) 효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면, 나머지 거래도 효력이 부인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쌍방이 증권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메신저가 아닌 텔레그램 상에서 대화가 오갔다는 점에서 매매 의사가 확정적이라고 보지 않았다.
물론 ‘고비’도 있었다. 현대차증권(법무법인 율촌 대리)측에서 ‘파킹(packing) 거래’의 불법성을 강조하면서 논점을 호도하려 했던 것. 파킹거래는 직원들 사이의 개인적 친밀관계를 이용해 초과분 어음을 맡기는 비정상적 행위로 2008년에 금융권에서 크게 문제가 됐다가 자취를 감췄지만, 일부가 여전히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태평양은 "술수 보다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보고 판단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고, 이러한 정공법이 결국 판결을 뒤집었다. 다만 증거로 제출된 통화내역에 쌍방이 파킹거래를 하고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정황이 담겼고, 재판부가 이에 대한 원고 책임을 일부 인정해 손해배상액의 70%만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태평양에 합류한 김성수 변호사(24기)는 "소수 기관투자자들만이 관여하는 ABCP 장외시장 거래의 현실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 금융기관 담당자들 사이에 이뤄진 비정형적 합의에 대해서도 법적 구속력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또 "공정성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한 건전한 금융거래질서 확립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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