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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출처·경영진·기업문화…쿠팡 미국 증시행은 '예정된 절차' - 한겨레

뉴욕증시 상장 공식화, 상장신고서 보니
쿠팡 핵심 임원들 거의 미국인…창업자 김범석 29배 슈퍼의결권
‘한국의 아마존’ 쿠팡 뉴욕증시행…지난해 매출 1년새 90% 증가
설연휴 마지막날인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건물 앞에 쿠팡배송 차량이 세워져 있다. <br>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설연휴 마지막날인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건물 앞에 쿠팡배송 차량이 세워져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국의 아마존’이라 알려진 쿠팡의 미국 증시행은 ‘예정된 절차’였다. 한국의 쿠팡은 미국 델라웨어주에 있는 기업(쿠팡LLC)의 ‘한국 지점’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잇단 쿠팡 물류·택배 노동자의 과로사에도 경영진 대응이 굼뜬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한국에서 기업하기 힘들어 미국에서 상장한다”는 얘기를 쏟아낸다. 그러나 자금 조달 방식과 경영진, 기업 문화 등이 모두 ‘미국식’인 이 회사가 한국 소비자를 상대로 영업활동을 하고 한국인을 대규모로 고용하는 점에서 과거 국내 대기업들의 미국 증시행 및 그 시도와 결을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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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베일을 벗다
14일 쿠팡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S-1)에는 베일에 싸여 있던 쿠팡의 진면목이 담겨 있다. 우선 영업 현황이다. 지난해 매출은 119억6734만달러(약 13조2500억원)로 한 해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코로나19 특수를 누린 사실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영업손실도 한 해 전보다 22% 감소한 5억2773만달러(5842억원)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경영진 면면이다. 쿠팡 한국지점은 비상장사라는 이유로 경영진 구성이 담긴 정기보고서를 지금까지 금융감독원에 내지 않았다. 그 탓에 쿠팡을 움직이는 핵심 인물이 누구인지 명확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쿠팡 한국지점은 일부 임원의 영입 사실만 뒤늦게 언론에 전하는 데 그쳤다. 신고서엔 이사진과 핵심 임원 명단과 프로필이 담겨 있다.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 김범석(43)씨 외에도 공유택시 우버 시스템을 만든 투안 팸(52)이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미 아마존 출신 고라브 아난드(45)다. 집행 임원 중 비교적 이른 2017년부터 쿠팡에 몸담았다. 비상임이사로는 미국에서 벤처캐피털을 운영 중인 닐 메타(36)가 2010년부터 맡고 있고, 지난 1월에 정보기술 기업을 운영 중인 해리 유(61)가 최근 결합했다. 이들을 포함해 핵심 임원들이 모두 미국을 주무대로 삼아 활동했거나 미국 현지 경험이 많은 이들이다. 경영진 중 드문 한국 국적 인사도 마찬가지다. 한국지점 대표(경영총괄)인 강한승씨는 한국에서 법관과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냈으나 주미대사관(사법협력관)에서 근무했다. 김범석 의장도 일찌감치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나 미 하버드대에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친 뒤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다.
미국 관행 뼛속 깊이
쿠팡 주요 주주 중 한국 국적의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알려진 바 없다. 미국에서 모은 자금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한 구조다. 김 의장이 이런 기업 지배·사업 구조를 짠 이유를 놓고 그간 여러 해석이 무성했다. 본사를 미국에 둔 이유가 자본 조달이 더 유리해서라는 분석이 그 예다. 하지만 이번 신고서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증권신고서에 담긴 쿠팡의 보상 체계는 전형적인 미국 관행을 따른다. 정액 급여(salary)보다 조건이 붙은(vesting) 스톡옵션·그랜트(장려금) 등 다양한 형태의 주식보상(스톡 어워드)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경영자에게 가장 파격적인 보상을 하는 국가로, ‘경영자 천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 예로 지난해 가장 큰 보상을 받은 임원인 투안 팸 최고기술책임자는 지난해 9월 영입 후 두달 만에 2700만달러(약 300억원) 상당의 주식보상을 받았다. 그의 정액 급여(약 9억원)의 30배를 웃돈다. 쿠팡이 산정한 주식보상의 가치는 공정가액 기준인 터라 실제 상장에 성공해 쿠팡 주가가 오르게 되면 더 불어난다. 주식보상을 매개로 공격적으로 쿠팡이 인재를 영입한 흔적이다. 강한승씨도 입사 보름 만에 50억원 상당의 주식보상을 받았다. 창업주 김범석 의장에게만 부여된 차등의결권도 국내에선 기대하기 어렵다. 김 의장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클래스B)의 1주당 의결권을 일반 주식(클래스A)의 29배 보장받았다. 가령 1% 지분만으로도 29%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김 의장의 정확한 지분은 알려진 바 없다. 김 의장으로선 미국에 본사를 둬, 경영권 방어와 1천억원 상당의 주식보상 혜택을 모두 거머쥐게 됐다. 한편 신고서에는 김범석 대표 남동생 내외가 쿠팡에서 근무 중인 사실도 나타났다. 부부가 각각 최대 연봉을 47만5천달러(약 5억2500만원), 24만7천달러(약 2억7300만원) 받은 것으로 기재됐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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