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TSMC 60%, 삼성전자 40%
전체 시장 대비 격차 크게 좁혀질 것으로 예상
EUV 활용한 초미세공정에선 대등한 기술력
퀄컴 등 경쟁업체도 삼성전자 파운드리로
삼성전자는 후공정 등 협력사 끌어들여
'통합 서비스' 강화 추진
지난달 2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에서 관람객이 삼성전자 반도체 부스를 살피고 있다. /한경DB
3분기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 점유율이다. 매 분기 TSMC와 삼성전자 간 격차는 '35%포인트' 수준에서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지난해 4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30년 파운드리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엔비디아, 퀄컴 등의 고객 물량을 연이어 수주하며 매 분기 '사상 최고 매출'을 경신하고 있는 게 무색할 정도다.
물론 삼성전자는 TSMC와 상황이 좀 다르다.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으며 가용 자원 전부를 파운드리에 쏟아내는 TSMC와 달리 삼성전자는 D램, 낸드플래시, AP, 이미지센서, 파운드리 등 다양한 전선에서 경쟁 중이다. SK하이닉스(D램), 일본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낸드플래시), 미국 퀄컴(AP), 일본 소니(이미지센서), 대만 TSMC(파운드리) 등이 삼성전자가 마주하고 있는 강력한 라이벌들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파운드리에서 삼성전자가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지금처럼 '안정적인 2위'만 하더라도 성공"이란 현실론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 '희망적인' 전망이 나왔다. 대만의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 18일 내년 TSMC의 파운드리 점유율을 60%,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점유율을 40%로 예상했다. 다만 전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아닌 최신 파운드리 공정인 회로선폭(전류의 흐름을 컨트롤하는 채널 폭) '10nm(나노미터, 10억분의 1m)' 이하 공정 시장만 놓고 봤을 때의 전망이다. 쉽게 말해 전체 의류 시장 점유율이 20%에 못 미치는 한국 업체가 내년 '최고급 명품' 시장에선 40%의 점유율을 갖게 된다는 의미다. 반도체업계에선 "의미 있는 전망"이란 얘기가 나온다. 왜일까.
세계 파운드리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600억달러(67조원) 규모였던 세계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올해 682억달러(약 76조원), 2021년 738억달러(약 83조원), 2022년 873억달러(약 98조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분업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용 AP(데이터처리, 통신 등을 담당하는 반도체) 'A' 시리즈를 설계하는 애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용 AP의 강자 퀄컴과 미디어텍, GPU(그래픽프로세서) 시장을 이끌고 있는 엔비디아와 AMD, FPGA(프로그래머블반도체)로 유명한 자일링스 등 '팹리스'들은 본업인 설계에만 집중하고 생산은 파운드리에 맡긴다. '잘하는 것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최근엔 '개발-설계-생산' 등 모든 과정을 다 하는 종합 반도체 기업의 대표주자 인텔마저도 비핵심 제품에 대해선 생산을 파운드리업체에 위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러 고객의 설계를 받아 제품을 만드는 파운드리 업(業)의 특성 상 '고객 비밀유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삼성전자'라는 같은 지붕 아래 있는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가 애플, 퀄컴, 미디어텍 등 스마트폰용이나 자동차용 반도체를 설계하는 주요 팹리스 고객사들과 '경쟁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스마트폰용 AP, 자동차용 AP인 '엑시노스'를 만들며 퀄컴, 애플, 미디어텍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사진=EPA
회로를 세밀하게 그려야하는 7nm 이하 공정에선 EUV(극자외선) 노광장비가 필수적이다. EUV 장비는 대당 가격이 1500억원에 육박한다. 라인 건설에 수십조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다. 초미세공정인만큼 축적된 기술 노하우도 필요하다. 대규모 자본을 투자할 수 있고 숙련된 인력을 갖춘 업체는 대만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전 세계에 두 곳 밖에 없다.
EUV 생산라인이 있는 경기 화성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전경. /한경DB
초미세공정 시장에 두 업체만 남게되자 TSMC의 지배력이 약해지고 있다. TSMC가 아무리 삼섬전자보다 3~4배의 자금을 초미세공정 라인 증설에 투자한다고해도 단기간 늘릴 수 있는 생산능력엔 한계가 있다. 삼성전자도 수년 전부터 EUV 장비를 활용한 7nm, 5nm, 4nm, 3nm 공정을 차근차근 준비하며 경쟁력 강화에 힘썼다. 대만 TSMC를 앞선다고 표현하긴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공정 기술만 놓고보면 '대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상황이 변하면서 팹리스들도 조금씩 삼성전자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세계 1위 스마트폰 AP 업체 미국 퀄컴이 대표적인 사례다. 퀄컴은 올 들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 대한 비중을 높이고 있다. 퀄컴의 AP 중급 모델인 스냅드래곤 4시리즈, 중상급 7시리즈를 8nm 공정에 맡겼고, 차기 플래그십 모델인 스냅드래곤 8시리즈도 삼성전자 5nm 파운드리공정을 통해 생산한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초미세공정 역량이 TSMC와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온 것, TSMC의 5nm 공정이 애플 물량으로 꽉 찬 것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갤럭시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퀄컴 스냅드래곤 AP를 쓰는 등 삼성전자와 퀄컴이 사업부별로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복잡한 관계인 것도 퀄컴이 애플, 미디어텍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원인으로 평가된다
박재홍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디자인 플랫폼 개발실장)이 지난달 29일 열린 '세이프(SAFE, Samsung Advanced Foundry Ecosystem) 포럼'에서 두 번 강조한 말이다. 세이프 포럼은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와 고객·파트너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최신 기술 동향을 공유하는 중요한 행사다. 라자 코두리 인텔 수석부사장 등 포럼 참석자의 면면만으로도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런 행사에서 세계 파운드리 시장 세계 2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핵심 임원이 '파트너와 절대 경쟁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2020 SAFE 포럼에서 발언 중인 박재홍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최근 세계 2위 후공정 업체 AMKOR와 디자인하우스 에이디테크놀로지 등 실력 있는 업체들을 삼성 파운드리 에코시스템(SAFE) 협력사로 끌어들였다. 박 부사장은 이날 행사에서 "협력업체 없는 삼성 파운드리는 불가능하다"며 생태계를 강화할 뜻을 밝혔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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