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 그룹 주가 급락... 애플은 '어... 그런 일 있었어?'
여전히 추측만 무성하다. 블룸버그는 '아직 출시 전인 제품 소식이 자꾸 나오니 애플이 화가 났다'고 표현했고, 로이터에선 '하청업체 전락에 대한 현대 측의 우려가 크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상반된 얘기지만, 애플도 현대도 사실상 '노코멘트' 상태라 자초지종을 알 수 없다. 루머의 루머만 난무한다.
애플의 신제품 뉴스를 기다려본 적 있는 사람들에겐 익숙한 장면이다. '사실'은 저 너머 애플의 손안에만 있고 '비밀'이다.
애플 소식에 정통하다는 해외 애널리스트도, 월가 소식에 가장 빠르다는 블룸버그도 모두 '확인'받지 못한 사실을 떠든단 측면에선 같다.
'소문대로라면' 기밀누설에 대한 단호한 처벌과 통제는 이번에도 반복됐다. (물론 애플은 노코멘트이지만) 모두가 현대차가 꼼짝 못 한다는 인상을 받지 않는가.
'세계 빅5 자동차 브랜드'이자 '한국 최대의 자동차 기업'인 현대차조차.
이런 상황이니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이라 해도 애플의 구체적인 입장을 알 수 없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 역시 서구 언론이 그토록 싫어하는 익명의 저널리즘, '정통한 소식통', '오랫동안 알아온 관계자' 입을 빌린 말들뿐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일어나는 전기차를 둘러싼 소동은 애플의 자기장 안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이다. 한국의 우리에게 낯설 뿐이다.
궁금하다. 대체, 어린 애들 소꿉장난도 아닌데 '비밀'이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협상만 잘하고, 사업성만 충분하면 되지 왜 자꾸 다른 기업을 '통제'하려고 하고 길들이려 할까? 현대차한테 왜 그러는 걸까, 대체?
■ '페이스북이 당신을 추적하게 놔두시겠어요?' ... 애플 앞에선 페이스북도 안절부절
페이스북이 신문에 '애플을 비판하는' 전면 광고를 냈다. (신문광고 시장의 씨를 말려버린다는 평가를 받은 페이스북이 신문광고를!) 저커버그는 '애플이 지배력을 남용하며 자사 이익만 추구한다'고 육성 비판도 했다.(이게 인스타도 왓츠앱도 인수해버린 소셜미디어 공룡 페북 CEO가 할 수 있는 말일까?)
애플이 도입한다는 단 한 문장 때문이다.
무료인 페이스북은 광고로 돈을 번다. (구글보다 더 번다)
신문과 TV 등 올드(Old) 미디어가 가난해지고, '올드' 해진 건 이 때문이다. 그 힘은 사용자 정보다. 페북에 올리는 글에 사용된 단어, 댓글을 다는 글, 좋아요 누른 사진, 검색, 사용 습관... 모든 데이터가 광고를 위한 정보로 최적화된다.
'사용자의 선호도'를 파악하는데 페이스북보다 능한 빅테크는 없다. 게다가 사용자는 수십억 명이다. 페이스북의 힘은 이 '표적광고' 정보다.
그런데 저 단 한 문장이 이 페북의 힘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다. 광고업계에선 70~90%가 '아니오'를 누를 것으로 본다. 어쩌면 페이스북 모델의 종말이다. 저커버그가 펄쩍 뛸만하다.
'독점적 지위 남용이다', '페북을 통해 저비용 광고를 할 수 있게 된 소기업들이 피해를 본다', '그렇게 사용자 생각을 하면 비싼 아이폰 가격이나 낮춰라' ... '우리 직원은 아이폰 쓰지 마라' 고 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애플은 느긋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프라이버시'가 가장 중요한 사업전략이라고 말한다. 차등 사생활(differential privacy)이라는 개념도 도입했다.
사용자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정확한 데이터 값 대신 근사치로 데이터를 모아 사용하자는 개념이다. 팀 쿡은 올 초 '데이터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어떤 사업이 사용자를 잘못된 생각으로 이끌며, 데이터를 착취하고, 선택권을 제한하는 구조에 기반했다면, 애플은 그런 사업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바꿔야죠.
생명을 살리는 백신 접종에 대한 공적 신뢰를 무력화하는 콘텐츠를 그저 참는 수준이 아니고 보상까지 하면 어떻게 될까? 단지 많이 본다는 이유로 음모론이나 폭력 선동을 우선시하면 결과는 뭘까? 알고리즘을 자양분 삼아 잘못된 정보와 음모론이 난무하는데 더는 눈 감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양극화와 신뢰 상실, 폭력을 낳고 있단 걸 외면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딜레마가 사회적 재앙을 초래하게 둘 수 없습니다." |
빅테크 사이의 물러설 수 없는 이 싸움은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은 소송을 불사할 것 같다. 어찌 보면 득이 될 것이 없을 이 싸움을 애플은 왜 할까?
■ '프라이버시'라는 애플의 성채(Acropolis)
2015년 12월, 두 테러범이 애플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미 캘리포니아의 한 파티장에서 총기를 난사한 복면 테러범들(14명이 죽고 21명이 다쳤다)이 아이폰을 쓰고 있었다.
FBI가 공범 여부 조사를 위해 아이폰 잠금 해제를 요청(명령서를 발부했다.)했지만 애플은 거부했다. '사생활 보호' 때문이다.
소송을 걸었고 법원은 협조하라는 강제명령을 내렸지만, 애플은 거부했다.
<애플과 추종자들의 입장> -휴대전화를 강제로 열어보도록 허용하는 새 운영체제를 만들면, 이는 곧 악당을 위한 뒷문(백도어)를 만드는 것이므로 반대한다. -정부는 민간기업을 개인정보 감시의 통로로 삼아서는 안 된다. <플랫폼 제국의 미래 The Four, 스콧 갤러웨이>에서 |
결국, 어떻게 되었냐고? FBI는 석 달 뒤 직접 암호를 풀어야 했다. (미 언론은 이스라엘 포렌식 업체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애플은 어떻게 되었을까? FBI는 "(암호를 풀었으니) 애플의 협조가 필요 없다"며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한 협조 강제요청 소송을 스스로 취하했다.
FBI조차 애플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한쪽에선 미국 기업이 테러범들을 옹호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애플은 요지부동이었다. 옹호자들은 애플의 이런 사생활 보호 원칙에 더 열광했다.
요컨대 애플의 세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애플이 통제한다, 애플의 세계 안에서 사용자는 '프라이버시'를 보장받는다.
■ 완벽한 통제로 '성스러운 공간' 창조... '통제'는 괴팍함이 아닌 '애플의 본질'
NYU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 스콧 갤러웨이는 애플이 '스스로의 우주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스티브 잡스는 혁신 경제의 예수가 되었고 아이폰은 그를 섬기는 성스러운 매개물'이라고 표현한다.
<플랫폼 제국의 미래 The Four, 스콧 갤러웨이>
최소한 이용자들에게만큼은 아이폰은 단순한 IT 기기가 아니라 성스러운 물건이란 의미다.
갤러웨이는 그래서 아이폰이 포르쉐, 티파니, 프라다 같은 '사치품'의 반열에 올랐다고 단정한다. '성공한 사치품의 5가지 특성'을 1. 우상화한 창업자 2. 장인정신 3. 수직적 통합 4. 세계무대로의 확산 5. 프리미엄 가격을 아이폰은 다 갖췄다.
이 다섯은 분리되지 않는다. 아이폰은 '선지자' 잡스의 발명품이기에 완벽해야 한다.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 디자인까지 완벽해야 한다.
물리적으로든 소프트웨어적으로든 그 안은 기밀이다. 아이폰은 열어볼 수 없고, iOS는 그 어떤 외부 기업에도 공유하지 않는다. 테러 방지 목적으로 정부가 요청해도 '그 안을 들여다보는 일에 대한 협조'는 불가능하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광고'도 동일하다. 애플의 '허락을 받지 않은' 광고는 불가하다. 앱스토어도 통제한다. 모든 앱은 애플의 감시하에 장터에 올라간다. 일부 앱은 애플의 '프라이버시 정책'을 이유로 거부된다.
제조 과정도 '외주' 같지만, 전통적인 외주는 아니다. 7~800여 개에 달하는 아이폰 부품은 애플이 개별 업체와 직접 협상해 조달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공급망 관리(Global supply chain management) 체계다. 폭스콘은 그저 조립할 뿐이다. 폭스콘의 영업이익은 2~3% 수준에서 통제한다.
통제와 프라이버시, 그리고 병적인 기밀 유지.
이는 '창업자'의 정신이며, '장인적 기질'이다. '수직적 통합'의 수단인 동시에 세계를 아우르며 '높은 마진'을 보장하는 경영전략이다. 종교적인 수준의 신뢰를 받는 '사치품 아이폰'이 가능한 이유이고, 애플이 지구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 된 비결이다.
■ '애플이 화났다'는 게 기사가 되는 세상
애플의 신제품은 늘 자체 콘퍼런스에서 '한 가지 더! One More Thing'라는 구호와 함께 등장해야 한다.
그러니 블룸버그가 '애플이 화나서' 협상이 중단됐다는, 어찌 보면 비즈니스 세계에선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기사를 썼는데 전 세계가 받아쓰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다.
만약(역시 만약이 들어가야 한다) 애플이 폭스콘에 요구한 정도의 통제를 현대에 요구했다면, 로이터가 말하는 대로 현대의 임원은 난감했을 수 있다.
현대가 '협력사로서 발주사의 모든 요구를 철저히 수용하고, 부품도 주는 대로 쓰고, 영업이익률마저 정해줄 테니 수용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면... (창사 이래 현대가 과연 저런 주문을 '하는 입장'이 아니라 '받는 입장'이 될 거라는 상상을 해보기는 했을까)
■ 반론 : 이 시장은 다르다
하지만 스마트폰 성공의 공식을 자동차에 그대로 적용할 순 없다는 분석도 잇따른다.
자동차는 다르다는 것이다. 테슬라처럼 구멍가게로 시작하면 모를까(2008년 로드스터를 출시한 테슬라는 그해 겨우 2,000여 대를 팔았다. 모델3가 출시된 2017년이 되어서야 10만대를 달성했다.), 루머처럼 출시 첫해 10만대 양산을 목표로 한다면 '맨땅'에서 시작할 수는 없다.
전기차 플랫폼을 보유하고, 미국에 공장이 있고, 숙련된 업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중국에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시절이었다면 달랐겠지만, 지정학적 상황은 중국 옵션을 허락하지 않는다. )
현대가 거부하면 누가 해줄 수 있나? GM, VW, 토요타(예정) 정도가 전기차 플랫폼을 가지고 있거나 가까운 시일 내 가지게 된다. 누구도 '폭스콘'이 되기엔 '너무 크다'. 애플이 이른바 '갑'으로만 군림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동차는 휴대전화가 아니다. 임은영 삼성증권 수석 애널리스트는 제아무리 글로벌 공급망 관리에 빼어난 애플이라 할지라도 자동차 부품 공급망을 아이폰 수준으로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아이폰은 부품이 7~800개 수준이지만, 자동차는 전기차로 간다해도 만5천개 수준이다. 차종마다, 국가마다 이 부품의 조합은 달라진다. 수십 수백만 가지 경우의 수가 있고, 이 모든 경우의 수마다 품질관리와 보증도 완벽히 해내야 한다." |
■'프라이버시'와 '통제'의 왕국은 계속될 수 있을까
통제와 프라이버시의 왕국, 완벽주의의 군주 애플이 자동차 시장에서 일단 존재감을 드러냈다. 종교적 수준의 비밀주의도 여전하다. 현대에 '히스테리'를 부렸다는 기사가 전 세계를 도배한다.
일견 '비즈니스에 도움 되지 않는 괴팍한 갑질' 같지만, 한 층위 안을 들여다보면 그것이야말로 이 '애플'의 본질이다. 이 '애플'의 본질은 이번에도 관철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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