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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살 수 없어야 명품" 한국 소비자가 호구된 이유 - 매일경제

샤넬 매장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는 모습. /사진=매일경제DB
사진설명샤넬 매장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는 모습. /사진=매일경제DB
[김효혜기자의 생생유통] 한국인들의 명품 사랑이 나날이 유난해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의 패션 잡화 브랜드들이 울상을 짓고 있는 상황이지만 명품만은 유독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장사가 잘돼도 너무 잘되기 때문이다.

제품을 가져다 놓기 무섭게 팔리니 인기 상품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대기도 줄질 않는다. 수요가 폭증하는 데 반해 공급은 늘 비슷한 수준이어서 불균형이 자꾸 커진다. 이 같은 상황을 틈타 일부 명품들은 적극적인 가격 인상 정책을 펼치고 있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 또한 오르는 것이니 어떻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씁쓸한 기분이 든다.

한국의 명품 소비가 늘어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야기한 보복 소비 심리 확대가 큰 몫을 했다. 1년에 한 번 정도 해외여행을 가면서 작게나마 스스로를 위한 힐링과 사치를 즐겨왔던 사람들이 그 기회를 강제로 박탈당하자, 대신 그에 상응하는 명품을 소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행도 못가는데 그 돈으로 명품백이나 사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얘기다. 이 같은 현상은 30·40대들에게서 두드러진다.


주식과 코인 투자가 활발해진 것도 명품 소비가 늘어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작년은 주린이(주식과 어린이의 합성어·주식 투자 초보자들을 일컫는 말)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진 해였다. 주식시장이 연일 신기록을 세울 만큼 좋았기 때문이다. 코인도 마찬가지였다. 주식 투자와 코인 투자를 통해 돈을 번 사람들이 늘었고, 그들 중 상당수는 그렇게 얻은 가욋돈으로 자신 혹은 가족이나 애인을 위한 선물을 구매했다. 30대 직장인 김 모씨도 주식 투자로 번 돈으로 아내에게 명품백을 선물했다. 김씨는 "주변에 주식해서 돈 번 친구들 상당수가 아내에게 명품 선물을 하더라"며 "약간 공돈이라는 느낌이 있어서 기분 좋게 소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명품들의 가격 인상 정책은 이런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증폭시킨 또 다른 원인이다. 소비자들로 하여금 "기왕 살 거면 더 비싸지기 전에 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재테크를 위한 리셀 시장을 노리고 구매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양산했다. 명품들의 마케팅이 아주 똑똑했다.

소비자들은 "가격을 너무 자주 올린다. 우리를 호구로 아느냐"고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명품을 사러 간다. 최근에는 샤넬이 4월 중 일부 제품 가격을 올린다는 소문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자 값이 오르기 전에 구매하려는 사람이 몰리는 `오픈런(Open Run·매장 문이 열기 전에 줄을 서는 행위)` 현상이 벌어졌다. 새치기로 불거진 시비 때문에 경찰이 출동한 곳도 있다.

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일부 명품 매장에 들어가려면 시간에 상관없이 2~3시간 기다려야 한다. 문 열자마자 와야 그나마 원하는 물건을 살 가능성이 생긴다"고 했다.

지난해 드라마 `부부의세계`에서 배우 김희애가 들고 나와 유명해진 루이비통의 카퓌신 미니 블랙.루이비통은 지난달 해당 가방의 가격을 508만원에서 540만원으로 올렸다. /사진=루이비통 홈페이지
사진설명지난해 드라마 `부부의세계`에서 배우 김희애가 들고 나와 유명해진 루이비통의 카퓌신 미니 블랙.루이비통은 지난달 해당 가방의 가격을 508만원에서 540만원으로 올렸다. /사진=루이비통 홈페이지
상황이 이러니 명품들은 계속해서 `거리낌 없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 샤넬은 지난해 5월과 11월 `클래식백`을 비롯한 주요 제품 가격을 두 차례 인상했고, 루이비통은 지난해 3월과 5월 국내 판매 가격을 올렸다. 루이비통은 심지어 올해 2월에만 두 차례 인상을 추가로 단행했다. 에르메스는 매년 국내 판매 가격을 올리고 있다.

한 명품 업계 관계자는 "아무나 살 수 없어야 명품이지 않나. 브랜드 포지셔닝을 위해서라도 가격을 더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명품이 명품으로 존재하기 위해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아무나 사지 말라`는 마케팅 전략이 한국인들에게 유난히 잘 먹히는 것 같다는 분석도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나온다.

덕분에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로 불리는 3대 명품은 매출은 나날이 고공 행진하고 있다. 루이비통코리아유한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1조467억원으로 전년 대비 33.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76.7% 늘어난 1519억원을 기록했다. 루이비통코리아 매출이 1조원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1년(4973억원)과 비교하면 9년 만에 두 배로 뛴 셈이다.

샤넬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9296억원을 기록했다.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던 2019년 대비로는 12.6% 감소했으나 지난해 면세점이 `개점휴업` 상태였던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성장을 이룬 셈이다. 샤넬은 다른 명품 브랜드와 달리 샤넬코리아가 국내사업부와 면세사업부를 함께 운영한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491억원, 1069억원으로 34.4%, 31.8% 증가했다.

에르메스 또한 매출이 늘었다. 지난해 매출이 4190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15.8%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333억원으로 15.9% 늘었다.

이들 3대 명품이 매년 본사에 배당 명목으로 송금하는 금액은 1000억원을 훌쩍 넘는다. 지난해 에르메스코리아는 당기순이익의 85%인 840억원을 배당했다. 샤넬코리아는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대한 기부금은 지난해 샤넬코리아 6억원, 에르메스코리아 3억원, 루이비통은 0원이었다. 고용도 아쉬운 수준이다. 현재 직원수는 샤넬 1366명, 루이비통 809명, 에르메스 286명에 불과하다.

한 패션 업계 관계자는 "상황이 이러니 한국 시장에서 명품의 콧대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며 "명품들의 잦은 가격 인상 정책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효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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