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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원짜리 20만원에도 못 구해"…삼성 사장들도 '긴급 출장' - 한국경제

반도체 품귀…CCTV도 꺼진다

中 '입도선매'·중간상 '사재기'로
반도체값 천정부지 치솟아

지금 주문해도 2년 대기
대기업들마저 공급사 찾아 읍소

반도체 품귀 현상이 자동차와 휴대폰을 넘어 전 산업 현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 반도체 칩 가격은 지난해 말 대비 10배 이상 폭등했고 반도체가 없어 신제품 출시를 연기하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경기 이천에 있는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생산라인. 한경DB

반도체 품귀 현상이 자동차와 휴대폰을 넘어 전 산업 현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 반도체 칩 가격은 지난해 말 대비 10배 이상 폭등했고 반도체가 없어 신제품 출시를 연기하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경기 이천에 있는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생산라인. 한경DB

수도권에 있는 폐쇄회로TV(CCTV) 카메라 전문 업체 W사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을 구하지 못해 초비상이다. 반도체 품귀로 유통시장에서 지난해 개당 8달러 하던 MCU가 최근 50달러로 여섯 배 이상으로 뛰었지만 필요한 물량을 확보할 수 없을 정도다. MCU는 정보기술(IT) 기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칩으로 중소 IT업체들은 해외 반도체기업의 대리점을 통해 구매한다. W사 관계자는 “재고가 바닥을 보여 가격 불문하고 계속 주문을 넣고 있지만 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18일 IT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품귀로 국내 산업현장이 ‘대혼란’을 겪고 있다. 자동차에서 시작된 칩 부족이 스마트폰을 거쳐 TV, 생활가전, PC, 소형 전자기기 등 IT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가격이 제품별로 많게는 30배 이상 뛰었지만 웃돈을 얹어줘도 확보가 쉽지 않다.

"2만원짜리 20만원에도 못 구해"…삼성 사장들도 '긴급 출장'
구매력에서 밀리는 중소 IT업체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들 업체는 구매 물량이 많지 않아 반도체업체 본사가 아니라 중간대리점과 거래하는데, 최근 이들이 가격 상승을 노리고 ‘물건 잠그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 의료기기업체 관계자는 “요즘 MCU 유통업체들이 ‘슈퍼 갑(甲)’ 행세를 하고 있다”며 “ST마이크로 등 독일 기업 본사에 문의해도 리드타임(주문 후 공급까지의 기간)이 기본 40주, 일부 품목은 2년까지 늘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LG전자조차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파워반도체(PMIC) 등을 원활하게 조달하지 못해 TV와 가전제품을 계획 물량보다 10~20% 이상 적게 생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HP도 반도체 부족으로 교육용 컴퓨터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고, 중국 생활가전업체 로밤은 칩 부족 때문에 오븐 신제품 출시를 4개월 늦추는 등 세계 IT업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중국 IT업체들이 사재기에 나서면서 가수요까지 붙어 개당 1달러에 거래되던 특정 반도체 가격이 32달러로 폭등하는 등 수급체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 한 중견 반도체업체 고위 관계자는 “칩의 원재료인 웨이퍼까지 ‘쇼티지(공급 부족)’ 상황으로 가고 있다”며 “반도체 대란이 언제 해소될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10배 값 주고 칩 쓸어가는 中…삼성 사장들도 "재고 없다" 긴급출장
'반도체 쇼티지' TV·소형가전 등 산업현장 전방위 확산
삼성전자 TV 사업을 총괄하는 한종희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은 지난주 대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TV 핵심 부품인 DDI(디스플레이구동칩)의 공급 부족 상황이 심각해져 급히 잡은 출장이다. 한 사장은 DDI 납품업체 미디어텍을 방문해 ‘안정적 공급’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중순엔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을 책임지는 노태문 무선사업부장(사장)이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목적지는 스마트폰용 반도체 세계 1위 업체 퀄컴. 노 사장은 퀄컴에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긴급 납품을 요청했다.
○“가격 불문…물량 확보가 최우선”
18일 산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품귀 현상이 자동차와 휴대폰을 넘어 전 산업 현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강력한 구매 파워를 가진 삼성전자 완제품(세트) 부문 최고위 경영진이 직접 긴급 출장에 나설 정도로 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각하다. 대기업 구매팀 관계자는 “가격에 관계없이 반도체 물량을 확보하는 회사가 ‘승자’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반도체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게 정보기술(IT) 기업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폐쇄회로TV(CCTV)나 의료기기에 들어가는 MCU(마이크로컨트롤러) 가격은 지난해 개당 8달러에서 최근 50달러 수준으로 급등했다. 저가 범용 제품이지만 가격이 6배 넘게 뛸 정도로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바뀌었다. 원가 상승을 감수하고 구매하려고 해도 ‘없어서 못 사는’ 상황이란 게 IT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반도체 품귀 현상의 진원지로 꼽히는 자동차산업 상황은 악화일로다. 보쉬, 콘티넨탈, 현대모비스 등 글로벌 자동차 부품회사 구매팀은 초비상이다. 이들은 중국, 홍콩 등의 블랙마켓(재고 거래 시장)까지 훑으며 5~6배 가격을 주고 반도체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MCU 생산업체 본사엔 차 부품사 구매팀이 진을 치고 있다”고 전했다.

○재고 확보 경쟁…가격 급등
지난해 말 본격화한 반도체 쇼티지 사태가 최근 심각해진 건 ‘재고 확보’ 경쟁이 불붙었기 때문이다. 중국 IT 기업들은 세계 유통시장에서 정상 가격의 최대 20배를 주고 칩을 쓸어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중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수출 규제도 영향을 미쳤다.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TSMC의 마크 리우 대표는 “일부 기업이 재고 확보를 위해 주문을 두 배 정도 늘린 것이 최근 품귀 현상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한 카메라 업체 관계자는 “MCU가 시장에 풀리는 대로 중국 업체들이 ‘싹쓸이’한다는 얘기가 있다”며 “재고가 떨어지면 생산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유통업체들의 ‘물건 잠그기’도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T 대기업들은 반도체 생산업체와 직접 거래하지만 구매량이 적은 중견·중소기업은 도매상 역할을 하는 대리점과 거래한다. 대리점들이 반도체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의도적으로 시장에 물량을 풀지 않는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내 한 중견 난방기기 업체 관계자는 “반도체 대리점 업체들이 본사 창고에 물건을 쌓아두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설명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지난 15일 “20달러짜리 모뎀 가격이 10배 치솟은 일이 있었다”며 “유통업체들의 반도체 사재기 때문에 가격이 급등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생산 차질·판매가 인상 ‘연쇄 파장’
CCTV, 웹카메라 등 시장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반도체들은 최근 아예 단종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품귀가 각국의 최우선 해결 과제로 떠오르면서 NXP, ST마이크로 등이 가전용 MCU 대신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서다.

반도체를 구할 수 없어 생산을 중단한 해외 중소업체도 나오고 있다. 웹캠을 생산하는 미국 스타트업 와이즈랩스는 반도체 재고가 없어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대 가전 기업인 월풀 중국법인의 제이슨 아이 사장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반도체 칩이 부족해 유럽과 미국으로 보내는 물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계획 물량의 25% 정도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제품 가격 상승 우려도 커지고 있다. MCU뿐만 아니라 DDI 등 TV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 가격도 최근 20~30% 급등하면서 제품 원가 상승의 요인이 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일본 소니와 중국 샤오미는 반도체 부족을 이유로 최근 TV 등 일부 제품 가격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가전업계 상황도 비슷하다. 한 IT 대기업 관계자는 “반도체 등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고객 할인율이나 판매가격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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