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안정’ 책무 더한 한은법 개정안 잇따라
코로나19 사태 뒤 소극적 행보에 대한 불만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으로 ‘물가안정’에 ‘금융안정’이 덧붙여진 것은 2011년 한은법 개정 때였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마리였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만 추구해서는 거시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국내에서도 퍼지면서 한은법 목적 조항에 금융안정이 추가됐다. 올해로 70년에 이르는 한은 역사에서 큰 변곡점의 하나였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은 역사에 또 다른 변곡점을 만들어낼 계기로 떠올랐다. 감염병 사태에 따른 고용충격이 커 한은의 목적에 ‘고용안정’을 추가해 중앙은행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대응하도록 하자는 제안이 잇따라 나온다. 여야 모두에서 이런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처럼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과감하게 펼쳐 실물경기를 지원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한은에 고용안정의 책무를 아울러 지우도록 하자는 구상은 지난 2017년 한은이 한국경제학회에 용역을 맡긴 연구 작업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저성장, 저물가 흐름에 금융 불안감이 퍼져 있는 중에 이뤄진 ‘한은의 역할 재정립 및 정책수단 확보 방안’에 관한 연구였다. 당시 5명으로 이뤄진 연구팀의 일원이었던 김진일 고려대 교수는 “(한은법 목적 조항에) 고용안정을 넣어야 하는지를 두고 논의한 뒤 내린 결론은 ‘아직은 아니다’였다”고 말했다. “노동시장 데이터(통계 자료)가 믿을만하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고 했다. 한은의 설립 목적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은 19·20대 국회에서도 제출된 바 있다. 이번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이 새삼스럽지 않은 셈이다. 그럼에도 관심을 끄는 대목은 있다. 코로나 사태로 고용위기감이 고조돼 있고, 이 때문에 법 개정안에 여야 간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 같은 당 김경협 의원, 국민의힘 류성걸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놓고 있다. 박 의원 안에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고용진 민주당 의원과, 류성걸 의원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야 간사를 맡고 있다. 류 의원은 법안 배경으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변화한 경제·사회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한은은 이런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한은의 설립 목적에 고용안정을 추가해 실물경제 지원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광온 의원, 김경협 의원의 개정안과 제안 이유도 비슷하다. 한은 금통위의 한 위원은 “고용안정 목적을 추가하자는 얘기가 나올 초기엔 부정적이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며 “한은의 책임과 권한이 넓어지고 정부의 재정 확대 방안에 보조를 맞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진일 교수는 “고용 관련 통계가 업데이트(개선)됐고 고용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 그 때(2017년 연구용역)보다는 (법 개정의) 명분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법 개정 이전에 현행법과 제도 안에서라도 한은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한은 내부에서 한은에 쓴소리를 해온 차현진 연구조정역은 “법 조문에 고용안정을 넣고 빼는 문제는 무의미한 것”이라며 그보다는 현행법과 제도 아래에서 역할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법(4조)에 ‘물가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돼 있어 고용안정에 신경을 쓸 근거와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법 개정 움직임이나 한은의 역할 제고론 모두 코로나19 사태 뒤 한은이 금리 결정이나 통화 정책에서 소극적인 뒷북 대처에 머물렀다는 불만에서 비롯되고 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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