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기업 가이드라인' 논란
"경영 자율성 결정적 훼손"
15일 경영계 및 투자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연내 기금운용위원회 의결을 목표로 ‘국민연금기금 투자 기업의 이사회 구성, 운영 등에 관한 기준’(이사회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다. 지난 7월 31일 열린 기금운용위에서 보고됐다가 보류됐던 내용이다.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 9일 열린 세계경제연구원 콘퍼런스에서 이 가이드라인을 조만간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은 10개 핵심 원칙과 20여 개 세부원칙으로 구성돼 있다.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에 요구하는 이사회 등 지배구조의 모습을 구체적 지침으로 정한 것이다. 일단은 ‘권장 사항’이지만 지키지 않았다가는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를 위한 주주활동’에 나설 것을 시사하고 있다. 사실상 구속력을 지닌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상장사만 300여 곳에 이른다.
이에 대해 경영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경영권 승계 및 적대적 M&A 시도에 대한 경영권 방어와 같은 경영상 활동에 깊숙이 관여하겠다는 것”이라며 “승계에 관한 구체적 계획을 미리 공개하는 것은 투기자본의 공격에 기업이 패를 노출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해외 연기금의 관련 규정과 비교해 지나치게 구체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등 글로벌 연기금은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해 원칙 중심의 가이드라인만을 갖추고 있다. 다양한 경영 환경을 고려해 대원칙만을 밝히고, 유연하게 주주활동을 펼친다는 뜻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당초 작년 상반기에 나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영계의 반발로 적극적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 등 보다 일반적인 성격을 가진 선행 지침을 마련하는 작업이 지연되면서 1년 이상 늦어졌다. 올해 마지막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다음달 열린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곧 가이드라인 최종안을 제출해 연내 통과되도록 할 계획이다.
경영계는 가이드라인 시행에 우려를 밝히고 있다. 국내 경제에 비해 덩치가 큰 ‘연못 속 고래’ 국민연금이 기업 이사회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는 점에서다.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국내 상장사는 300여 곳이다. 10% 이상을 가진 상장사도 100여 곳에 이른다. 자본시장의 ‘슈퍼 갑’으로 불리는 국민연금 가이드라인은 국민연금의 투자 지분만큼의 영향력을 갖는 게 아니다. 국내외 기관투자가들도 국민연금의 규정과 판단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국민연금이 주주활동의 ‘표적’이 될 기업을 찍어주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사회가 미리 승계 방안을 마련하도록 한 규정뿐 아니라 적대적 인수 시도에 대한 경영권 방어를 제한한 규정도 비판받고 있다. 새로 도입되는 이사회 가이드라인 잠정안은 ‘기업이 경영진이나 이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전환사채 등)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증권이나 신주를 발행하여 기업의 자본구조를 변경하거나, 인수합병(M&A)등의 경영 수단을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기업 재무담당 임원은 “얼핏 보면 그럴듯하지만 현실에선 재무구조 개선이나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경영 활동까지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최근 산업은행이 한진그룹의 아시아나 항공 인수를 지원하고 나선 것 역시 국민연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잘못된 행보로 해석할 수 있다. 금융업계에선 산업은행이 KCGI(강성부펀드)를 중심으로 한 3자 연합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자금을 대주고, 핵심 자회사인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 같은 자금 지원은 정부 입장에선 항공산업 살리기를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현 경영진의 이익을 지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이드라인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사회 가이드라인을 확정한 뒤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의 일환으로 기업에 사외이사 후보 선임을 요구하기 위한 사외이사 후보군을 만들 계획이다. 이 때문에 ‘정부 측 대변인’이 기업 이사회에서 한자리씩 차지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기업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독립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라고 강변하지만 정권을 잡는 쪽에선 수백 명의 밥벌이를 챙겨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오염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경영계 관계자도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국민연금이 뽑은 인사들의 독립성을 신뢰할 수 있겠나”며 “사외이사 풀이 실현된다면 연금사회주의라고 얘기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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