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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무서운 사람들] ④ "발버둥칠수록 더 깊은 수렁빠졌다"… 버틸 힘도 잃은 자영업자 - 조선비즈

입력 2020.12.31 12:00 | 수정 2020.12.31 13:12

“하루 16시간을 가게에서 보내지만 매장 포스기보다 TV를 더 많이 본다. 방역당국에서 뭐 하나 발표한다고 하면 발표 내용이 나올 때까지는 마음 졸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남모(61)씨에게 근황을 묻자 이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코로나 브리핑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에 손님이 끊기는 상황이 닥치니까 무섭더라”라며 “2020년을 돌아보면 늪에 빠진 것만 같은 한 해였다. 발버둥을 칠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 탓에 이미 힘이 빠질대로 빠져버렸다”며 한숨을 쉬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의 한 가게에 임시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은영 기자

올해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국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재앙’ 수준의 피해를 입었다. 코로나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미덕이 됐고 음식점과 카페는 물론 노래방과 PC방, 헬스장 등 대다수 자영업자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는 곳들은 ‘감염위험시설’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수입이 끊기다시피 한 자영업자들은 임대료와 인건비, 대출이자 등을 감당하며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최근 해외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지만, 내년에도 코로나 사태가 종식된다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자영업자들은 악몽과도 같았던 올해 상황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걱정에 내년을 맞기가 두렵다고 토로한다.

◇ “1, 2차 유행 때보다 더 힘들다” 출구 없는 자영업자

광주광역시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하고 있는 조모(47)씨는 “정부에서는 손님이 한 명 왔다 가면 30분 동안 방을 비워놓으라고 하는데, 방을 비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어차피 손님이 안 온다”며 “정부 방역 지침은 의미 없어진 지 오래”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은행에서 1~2억원가량 융자를 받아 창업한다고 가정하면 3년 내 상환이 일반적인데, 매달 나가는 대출금만 600~700만원”이라며 “월 고정비를 제외하면 줄일 수 있는 비용은 인건비 뿐이다. 아르바이트생을 최소한으로 두고도 매달 1000만원씩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 이상으로 비용을 줄일 방법은 결국 폐업해서 임대료를 내지 않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이민경

자영업자들의 ‘코로나 쇼크’는 올 연말 들어 더욱 심각해진 것으로 조사됐다. 더불어민주당 이동주 의원실이 공개한 한국신용데이터의 소상공인 매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소상공인의 카드결제 평균 매출은 51주차(12월 14~20일)에 전년 동기간 대비 32%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 사태가 시작돼 본격적으로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한 지난 9주차(2월 24~3월 1일)에 29%포인트를 기록한 것보다 악화한 수치다.

자료에 따르면 1차 유행 당시 소상공인 평균 매출액은 10~29%가량 감소하다 2차 유행에 접어들어서는 15~25%선을 유지했다. 그러다 지난 11월 말 22% 감소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픽=이민경

◇ 무너지는 자영업자들, 상가 시장도 붕괴… “중고 집기 값까지 다 내렸다” 

10개월 넘게 지속되는 매출 타격은 폐업으로 이어졌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11월 공개한 상가 임대 현황에 따르면 전국의 중대형 상가의 공실율은 1분기 11.7%였던 것이 2분기에는 12%, 이어 3분기에는 12.4%로 늘어났다. 소형 상가 역시 1분기 5.6%, 2분기 6%, 3분기 6.5%로 늘어났다. 

특히 전국에서 누적 확진자 수가 가장 많은 서울의 소형 상가 공실률은 2분기 4.2%에서 5.7%로 급증했다. 이 같은 올해 3분기 공실률은 관련 통계가 이뤄진 2014년 이후 최대 수치다.  지난달 소상공인연합회가 조사한 결과 소상공인 10명 중 7명이 폐업을 고민 중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PC방 운영을 시작했다는 이씨는 “이제 가게를 내놓을 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다. 영업 정지 때는 막노동을 나갔고 얼마 전엔 조금이라도 적자를 메워보려 200만원 받고 전용선도 바꿨다”고 했다. 

이씨는 “통신사 약정이 남은 채로 PC방을 폐업하게 된 지인이 ‘돈 줄 테니 전용선을 양도받지 않겠냐’고 하더라. 전용선을 바꾸면 IP주소, 와이파이, CCTV 등을 전부 손보고 영업도 3~4시간 못하게 되는데 그 돈이라도 벌어보려고 했다”며 “코로나 이전이었으면 당연히 안 했을 테지만 한 푼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 버티고는 있지만, 내년 6월이면 보증금을 올려 재계약을 해야 한다”며 “빚만 잔뜩 늘어난 상황에서 보증금까지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재계약을 포기하고 폐업하려 한다”고 했다.

거리두기 2.5단계 조치로 매장 내 취식이 금지된 카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달 카페를 폐업했다는 한 자영업자는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지난해엔 하루만에 카드 매출이 월세 두 배를 벌 때도 있었는데 거리두기 강화 이후로 일 매출이 10만원 밑으로 떨어지니 ‘멘탈’이 무너지더라”며 “부득이하게 가게를 접게 됐다”고 말했다.

폐업이 늘자 중고 집기 가격도 내렸다. 그는 “중고 업자들이 갑자기 집기들을 안 사겠다고 해서 어떻게 처분할지 다시 알아보고 있다. 제빙기 중고가격이 25만원이었는데 점점 내려간다. 죽겠다”라며 “냉장고에 남아 있는 우유는 열심히 마시는 중이고 액자 같은 인테리어 소품은 지인들에게 나눠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오후 서울의 한 PC방에 밤 9시 영업 종료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 “업계 사정 모른 채 ‘先 제재 後 지원’… 외면 받은 것 같았다”

정부는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1,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마쳤고 올 1월 3차 지원금 지급을 고려하고 있다. 또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1년 동안 최대 3000만원의 긴급경영안정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자영업자들은 “일회성 지원금도 감지덕지지만, ‘정부와의 소통’이 절실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성동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이모(46)씨는 “정부는 선제적 방역을 내걸면서 제재를 가한 다음에 지원금을 주는 식”이라며 “결정하기 전에 업주들과 함께 고민하고 정책 보완 방향을 논의하면 좋겠지만 어떤 높으신 분은 PC방에 원래 칸막이가 설치돼 있다는 사실도 모르더라”라고 말했다.

이씨는 또 “업주들한테 QR코드 관리를 당부하는데 막상 ‘관리자 모드’도 따로 없어 잠시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는 사이에 손님이 오면 QR코드를 잘 찍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도 했다. 그는 “결국 이름과 전화번호를 입력해야만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도록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이중 방역’에 대한 컴플레인을 듣는 건 내 몫이었다”고 말했다.

코인노래방 업주 조씨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1차 재난지원금 200만원을 한번 받았는데, 다음달에 낼 부가세를 예납하고 나니까 지원금은 어디 갔는지도 모르겠더라”라며 “차라리 매달 들어가는 전기료나 보험료, 부가세 등을 국가 차원에서 감면을 해준다면 ‘어렵지만 같이 버텨봅시다’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텐데, 지금 같은 대출 정책은 ‘무보증 해줄 테니 빚 내서 공과금 내라’는 말로 들려 힘이 빠진다”고 했다.

▲그래픽=이민경

◇ “새해 소망은 사치… 버틸 수만 있길 바란다”

새해를 단 하루 앞뒀지만 자영업자들은 더이상의 희망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 중구 명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2)씨는 “‘명동’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바글바글한 인파인데 지금은 한낮의 꿈처럼 되어버렸다”고 했다. 김씨는 코로나 이전에는 장사가 잘 안 되면 할인 행사를 하고 쿠폰을 뿌리거나 현수막이라도 걸면 회복이 됐었다”며 “그러나 올 한해는 연말 특수는커녕, 어떤 노력도 성과를 얻기 어려웠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그 동안 바닥을 기었던 매출이 한 순간에 돌아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애초에 코로나 이전처럼 되는 게 가능한지도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영업자들의 어두운 새해 전망은 수치로도 확인됐다. 지난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재무건전성은 내년에도 계속해서 악화할 것으로 나타났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서울 명동거리가 한산하다. /이은영 기자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자영업자 매출이 회복된다는 긍정적인 시나리오에서도 ‘유동성 위험가구’와 ‘상환불능가구’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유동성 위험가구는 누적수지가 금융자산을 넘어서는 가구, 상환불능가구는 누적적자가 순자산을 초과하는 가구를 일컫는다.

12월 유동성 위험가구 비중은 6.2%로 지난 3월 대비 두 배가량 늘었으며 내년 12월에는 최대 9.4%까지 더 늘 것으로 예측됐다. 상환불능가구 비중도 올 3월과 12월 모두 1.2%를 기록했지만 내년 12월에는 2.2%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유동성위험과 상환불능 상황에 동시에 처하게 되는 가구의 비중도 0.4%에서 2%대로 올라 이들의 경우 이전 상태로의 회복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측됐다.

김씨에게 새해 목표를 묻자 한숨 끝에 “일단 버티는데까지라도 버텨봐야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새해엔 코로나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 어떻게 해서든 가게를 유지하는게 목표”라며 “일단 잔뜩 쌓여있는 대출금부터 빨리 갚고 싶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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