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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성수동 수제화거리의 변신... MZ세대 열광하는 패션·리빙거리로 - 조선비즈

입력 2021.03.09 06:30

붉은 벽돌로 지은 공장 건물과 슬레이트로 마감한 자동차 공업사, 간판이 낡은 맞춤 구두 가게 사이에는 설치 미술품과 그림을 전시한 카페와 해외 가구 브랜드를 한데 모은 편집숍들이 한데 뒤섞여 있다.

행인들도 연령과 목적이 제각각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길을 찾는 20대 대학생 무리 옆으로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고, 자재 등을 실은 1톤 트럭 뒤편으로는 손을 잡고 가게들을 구경하는 젊은 연인이 걸어간다.

공장과 창고 등으로 사용되던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낡은 벽돌 건물들 안에는 원두를 볶는 카페와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등이 들어섰다. /유한빛 기자
지난 7일 찾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는 또 다시 변신 중이었다. ‘수제화거리’에 이어 ‘카페거리’로 이름을 날린 성수동의 새로운 얼굴은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 패션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의 반경 5㎞에는 2010년대 초중반 수제화 공장 300여곳과 부자재 판매상 200여곳이 밀집한 수제화거리로 유명해 졌다. 용도지역상 공업지역이기 때문에 지식산업센터(옛 아파트형 공장) 정도를 제외하면 개발이 제한됐고, 이 때문에 공업사나 의류 공장, 구두 공방 등의 오래된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래픽=박길우
건물 외관만 봐서는 1980~1990년대쯤에 시간이 멈춘 듯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아기자기한 식물과 램프 같은 소품으로 세련되게 꾸민 가게로 바뀐 곳이 많다. 붉은 벽돌 건물에 목재로 마감한 창고는 예술작품을 전시한 카페로 변신했고, 자동차부품 대리점과 가죽 가게들 틈에는 덴마크의 고급 조명 브랜드인 ‘루이스 폴센’이 단독 매장을 열었다.

공업지대 특유의 거친 분위기가 나면서도 프랜차이즈 매장이 드문 덕에 최근에는 고유한 디자인 콘셉트를 가진 상점들이 성수동으로 모여들고 있다. 청담동이나 신사동 가로수길에 들어설 법한 초고가 브랜드는 아니지만, 독특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얻은 패션이나 가구 브랜드와 잘 어울리는 지역이란 인식이 생긴 덕이다.

원예용품과 식물, 디자인 화분으로 공간을 채운 플랜테리어(식물과 인테리어의 합성어) 가게 ‘틸테이블’과 여러 브랜드의 가구를 모아 판매하는 ‘편집샵 토우드’, 디자이너 가구를 판매하는 ‘사무엘 스몰즈’ 등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입소문을 얻는 매장들이다.

한국시장 공략을 강화하기 위해 성수동에 단독 매장을 연 덴마크 조명 브랜드 루이스폴센 전경(위)과 식물 인테리어 전문 매장인 틸테이블의 내부. /유한빛 기자
이같은 부조화는 오히려 젊은층에게 성수동의 매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MZ세대(1980년대생인 밀레니얼세대와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Z세대)에게는 노출 콘크리트 벽과 벽돌, 페인트를 덧칠하지 않은 목재 문도 ‘복고풍 인테리어’나 ‘감성 인테리어’로 인기를 끌고 있다.

카페거리 끝자락에 자리한 ‘아더 스페이스 2.0’ 앞에는 평일 오후에도 십여 명 정도가 줄을 서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4년 설립된 한국 패션브랜드 ‘아더 에러’가 지난해 7월 성수동에 연 플래그십스토어(브랜드 이미지를 극대화한 매장)다. 2층에는 인테리어용 예술 소품을 판매하는 매장도 운영한다.

20대 대학원생인 김희연씨는 "소셜미디어에서 특이하고 예쁜 매장이라고 소문이 나서 직장인인 남자친구의 휴무일에 맞춰 찾아왔다"면서 "성수동은 감성 있는 가게가 많은 느낌이어서 카페나 폅집숍 등을 자주 방문한다"고 말했다.

유통 대기업들도 성수동을 주목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오설록티하우스와 화장품 체험 공간을 접목한 ‘아모레 성수’를 열고, 새로운 브랜드와 제품 등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패션브랜드 아더에러의 성수동 플래그십스토어에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는 방문객들. /유한빛 기자
이케아가 오는 4월까지 임시 운영하는 이케아랩 매장도 성수동에 마련됐다. 이케아 매장에서 판매하는 음료와 디저트를 판매하는 푸드랩과 쇼룸(전시장), 소규모 매장 등으로 구성했다.

이케아 관계자는 "출점 등을 고려할 때 지역의 다양한 특성을 고려하는데 기간 한정으로 이케아를 소개하는 실험적인 ‘랩(Lab)’ 매장인만큼, 도심에서 많은 소비자들이 방문할 만한 곳을 선택했다"면서 "성수동이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최신 유행하는 상권으로 주목받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다만 성수동 상권을 형성한 1등 공신인 수제화 거리는 한산한 분위기였다. 이따금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통과하는 행인과 차량들만 눈에 띄었다.

행인이 많지 않은 성수동 수제화거리 전경. /유한빛 기자
이 거리에서 7년째 수제화 가게를 운영한다는 전태수 JS수제화 대표는 "새로 생긴 카페나 가구 매장, 이 동네로 이사온 연예기획사 때문에 코로나 이전에는 주말마다 인산인해 일 정도로 젊은 방문객이 늘었지만 (구두 가게의)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면서 "젊은 사람들은 구두보다 운동화를 신고, 성수동에서 구두를 맞춰 신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이 동네가 뜨면서 가게 월세가 빠르게 올라, 공장이나 창고 등은 문을 닫고 떠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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